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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긴] 불협화음

Sandel 2016. 7. 3. 21:12







  음악은 마약이다. 그래, 한 번 빠져들면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랄까. 지구는 음악을 사랑한다. 아니, 지구 안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 중 3분의 2는 음악을 들으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나아가 모든 것을 음악으로 평가하는 곳도 있었다. 단지 여러 개의 악보를 눈으로 훑어보고, 그걸 따라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점수를 얻어낸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지. 허나 실제로 그런 장소가 있더라면, 바로 모든 이들이 들어볼 법한 콩쿠르가 아닐까 싶다.

  전국에 수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곳. 정해진 심사의원들의 채점에 따라 감히 순위가 나뉘어지는 곳. 그런 곳에 서서 연주하는 이들의 기분은 어떠할까. 분명 설렘보다 긴장에 눈이 멀어 초조해하겠지. 아아, 당연했다. 당연해야만 했다. 그래, 인간은 그렇게나 완벽한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겪는 법이니까. 실수를 겪고 나서 격하게 후회하며 눈물을 쏟는 누군가도 있지만, 실수가 무서워 아예 연주를 내다 던진 누군가도 있었다. 허나 전자도, 후자도 아닌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누군가도 있을 터였다. 

  그래, 콩쿠르는 바로 그런 곳이었기에 가능하다는 거다.

  콩쿠르 대기실은 여전히 곧 자기 순서가 다가올 것이라며 예상하는 연주자들의 몸부림이 생생히 느껴지는 곳이었다. 값진 정장, 화려한 드레스, 고가에 빠져드는 악세사리가 돋보인다 하더라도 정작 무대에 올라서야만 하는 급박감에 준비해 온 모든 것이 허무해지기 마련이었다. 대기실에서의 목소리는 언제나 변함 없었다. 이제 곧 자기 차례라는 둥, 실수하면 어쩌냐는 둥, 모든 연주자들 앞에 벽걸이 텔레비전이 대기실 문 위에 덩그러니 자리잡아 심사위원을 두고 연주해나가는 반주자와 연주자가 호흡을 맞춰나가는 장면이 펼쳐졌다. 허나 공교롭게도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은 3분의 1조차 되지 못했다. 이것도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을 법이었다.

  …한 치의 긴장이라도 푸는 순간, 자신을 놓고 뒤돌아보면 그것은 모두 적으로 보일 지어니.

  때는 벚꽃 바람 일렁이는 봄날, 걸맞지도 않던 엄숙한 콩쿠르의 낮선 공기, 여러 연주자가 오고가는 와중에 세 명의 심사위원들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오고갔다. 이는 너무나도 작았기에, 들릴리야 들리지 않는 개미들의 웅성이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허나 이번 공연장에 발을 들인 연주자는 심사위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자이면서 가느다란 체형은 그렇다 쳐도, 그들의 입으로 외국인이야? 라 작게 읊조린 것은 바로 그녀의 짙고도 무거운 푸른 눈동자를 보고 한 소리이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렌즈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니, 그들의 눈에는 그녀가 와국인처럼 보일 법 하기도 했다.

  흰 페인트를 뿌려놓은 듯한, 무릎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짧은 드레스가 신선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콩쿠르면 콩쿠르인만큼 모든 연주자들이 사전에 짜놓은 듯이 두꺼운 정장, 긴 드레스를 차려입고 올라왔으나 그녀는 어딘가 달라보였다. 아니, 현재 심사위원이 보이게 그녀에게 희망을 걸어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단 한 사람을 빼놓고서는.

  뒤에서부터 중앙으로 걸어오는 그녀는 가슴에 손을 얹어 인사한 뒤, 오케인 사인을 받고 제자리에서 재빠르게 준비를 끝마치고 있을 참이었다. 그럴 때일까, 어째서인지 반주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주위는 이따금씩 술렁거렸으나, 아마 그녀의 독주라 판단하고 세명의 심사위원들은 어렵사리 마른 침을 목구멍으로 삼키기 바쁘더라.

  피아노 자리가 휑하니 느껴지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가 입을 열 수 없었다. 대신 독주는 고독과 감탄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자리이기에, 혹여나 단 한 번의 공개적인 실수를 너그러이 받아주는 이가 없기에, 그렇기에 더더욱 돋보일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심사위원들이 독주를 높이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마이페이스를 유지한 채 한 손에 쥐었던 채와 바이올린을 따로 나누어 들어올렸다. 눈을 깜빡하던 사이에 그녀는 어느덧 다른 연주자와 다름없이 바이올린을 어깨에 걸치고 채를 바이올린 줄 위에 사뿐히 올려놓고 있었다. …그래, 모든 준비는 끝을 다다랐다. 긴장감이 심사위원석과 일반석을 맴도는 사이에 어떤 중년의 심사위원이 자신의 옆에 있는 젊은 심사위원의 어깨를 붙잡고 입을 열던 순간일까.


  "잠깐, 저 아이…"


  쥐도 새도 모르게 잠자코 있던 그녀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생각치도 못한 연주 타이밍에 그들은 놀라 자신들의 앞에 놓인 서류와 어지러이 휘도는 종이를 붙들며 그녀와 번갈아보기 시작했고, 그것을 눈치채는지 스을 웃어보는 그녀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의 연주곡은 다름 아닌 아샤 하이패츠의 파가니니 카프리스 No.24번이었다. 현대에서도 귀를 사로잡는 곡이기도 했으며, 그중에서 통통 튀어오르는 스타카토는 유일한 곡의 매력이기도 했다. 그들은 매의 눈으로 그녀의 약점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연주 도중 어긋난 곳은 없는지, 음정과 음색이 어색하지는 않던지, 연주장을 오고간 연주자들의 연주를 바라볼 때도 그들은 한결같이 깊숙한 약점을 찾아내 무작정 점수를 깎아내렸다. 참으로 잔혹하기도 하지, 허나 승부의 세계가 냉정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그들이 잘 알고 있었기에. 수많은 참가자들로부터 1등이란 큰 상품을 정해낸다는 것이 얼마나 기강해이지는 것인지, 겪어본 이들만 뼈저리게 실감하는 고통이나 다름없었다.

  어느덧 그녀의 연주가 클라이맥스를 이르는 와중에도 그들의 서늘한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허나 승리는 이미 그녀의 것이라고 단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녀는 그 어떠한 감점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슬쩍 뒤돌아 사람들의 반응을 보았을 때, 하나같이 그녀의 연주를 들으며 감탄하는 소리가 주변을 어수선하게 맴돌고 있었다. 나아가 그녀의 눈웃음과 함께 울려퍼지는 급박하고도 매서운 속도는 되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래, 정말로, 모두의 마음을 안정시키던 그녀의 곡이었다.

  모든 것은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녀에게로 쏠려오는 시선은 하나같이 긍정을 뜻하고, 심사위원도 편안히 심사를 하던 찰나였을까.

  연주 도중 시끄러이 울리는 종소리가 그녀의 연주를 멈추게 만들었다.

  그것은 몰락의 소리였다.

  종을 울린 사람은 오로지 심사위원만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바이올린과 채를 내려놓은 채 무대 밑으로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얼척없는 소리와 갑작스런 그녀의 퇴장에 관람석이 떠들석거리기 시작했다. 왜? 잘만 연주했는데? 완벽한 연주였는데? 이상하다고 느껴야만 했다. 그리 느낄 수밖에 없던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더라면,


  "잠깐,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딜 가시는 거예요!"


  종막이란 단어조차 없는 콩쿠르의 막을 멋대로 내리고서 사라진 어느 한 심사위원의 모습이 모든 것을 공허하게 으스러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