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이글] 패배자
그는 한없이 강했다. 칼부림을 치면 칠수록 불어오는 박진감은 그와 나의 고동을 증폭시켰다. 이윽고 쿵, 하고 울렸을 때 전투는 시작됐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 전투라고 확실히 단언했을 터다. 허나 그의 눈, 멀리서 바라보는 그의 형상을 보는 순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다. 단순히 '꼬마'란 뉘앙스를 풍겨오던 그에게서 맹수의 보폭을 실감해버리다니, 나조차도 가늠할 수 없던 일이었다.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 그의 존재를 한 층 더 띄우는 것은 바로 염동이었다. 염동을 멈춘다면 그는 그저 그런 평범한 꼬마로 돌아올 수 있으나, 방법이 오로지 하나 밖에 없었기에 이 비참한 전투를 계속 이어나가야만 했으리라.
「저 아이의 심장을 찌른다.」
그것이 아이의 염동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썩은 비린내가 진동하는 이 전장에서 최후의 승리자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헌데 이상했다. 그저 협력, 협력만을 고집한 내게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함께 혁명을 일으키던 우리들의 세력이 어쩌다 헛되이 무너졌는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이유를 찾기 위해 검을 뽑아, 바닥에 나뒹굴어져 있는 돌부스러기를 주워 내게 던지는 그의 허점을 찾을 뿐. 정녕, 이 일이 너와 내가 마무리를 깔끔하게 단정지을 수 있으리라 싶었던 무능력한 이야기였다.
"어이, 꼬마. 같은 팀인데 너무한 거…"
"누나가 기다리고 있어."
초점없는 그의 눈동자, 마치 눈앞에서 블랙홀을 바라보는 듯 했다. 나의 인력마저 저 눈길 하나로 인해 지금의 상황이든 뭐든, 무조건 빨아들이는 게 전부일 것만 같았다. 그가 말하는 누나. 누나를 향한 집념이 느껴지지 않았던 건, 애초에 그를 둘러싸던 염동의 탓인가. 이런 상념이 문득 들어가면서─ 아아, 가면 갈수록 성가신 녀석이라 중얼거리며 탄식을 뱉었다. 그렇게 가족까지 언급해가며 동정을 부추기는 그를 보면 볼수록….
날 버리고 사라진 나의 형들이 생각난단 말이다.
긴장 따위를 베어내었다. 이는 한꺼번에 날아오는 돌덩이들을 잘게 조각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차례차례 날아오는 모든 상념을 베어내고 한 치의 망설임조차 없던 그를, 그를. …?
"내 눈앞에서 당장 사라져버려."
「패배자는 당장 내 눈 앞에서,」
그의 싸늘한 한 마디에 쥐던 검이 사라졌다. 뒤늦게 알아차리니 주먹만을 쥔 채 그의 망연한 모습에 살기를 띄우며 그저, 그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빠르게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파악했다. 매마른 시체의 썩은 피비린내, 곧 비가 올 것 같은 느낌. 그것은 나의 오감으로도 느낄 수 있었으리라.
그가 나의 검을 숨기고 있던 게 아니었다. 왜냐면 내가 쥐고 있던 검은,
───.
한 순간에 나의 복부를 뚫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아, 그렇다. 검은 내게로 돌아와 중심을 향해, 복부를 향해, 아니. 나의 심장을 향해 곧게 찌르고 빠져나왔다. 관통과 동시에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나조차 나의 피가 분수대처럼 끝도 없이 쏟아지는 것을 실감했다. 이 감정은 무엇, 어떤, 설마 그에게서 느낀 오한인가. 아니면 공포인가.
그렇게 아득하고도 희미한 정신을 끌어안을 무렵 그의 얼굴이 미세하게, 미세하나 아주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형도, 한심하게 죽어버린 패배자."
승리를 만끽하는 여유로운 그의 표정으로부터 이미 죽음을 암시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던, 어린 살인마의 눈을 담궈놓은 채 캄캄하기 짝없는 내면독백만이 나를 기다리고, 바란듯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