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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杉晋助] 당신에게, 진혼곡을

Sandel 2015. 12. 26. 17:58
어딘가 텅, 하고 비어버렸다. 주변을 의식했을 때 공허함은 배로 불어났다. 그래, 내가 보고픈 그이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실감한 터다. 그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무엇도 없이 사라졌는데. 그리, 비참하게 죽음을 안아갔는데.
세상에 있어 그의 가치가 없어졌다. 그리하여 나조차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가 없는 세상에 히죽거리며 다니는 인간을 보면, 괜히 분이 차오른다. 우리들의 세상을 창조해낸 그이… 없다. 없다, 이제는 없다. 말끔히 사라졌다.

그이와 함께 '나'라는 존재도 뿔뿔히 흩어져간다.

이 심정을 누가 아랴. 아니, 절대 모르겠지. 나와 함께 하였던 이들도 나의 심정을 결코 모른다는 건 아니다. 허나, 마지막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딴 결말을 내자는 이는 누구인가. 애초에 그가 만든 세상을 더럽힌 사람은 누구인가. ……아아, 상념이 겹쳐진다. 쓸데없는 생각. 불필요한 생각에 심장이 두 조각, 세 조각, 백 조각으로 나뉘는 것 같아 고통을 느꼈다. 괴롭다.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그이의 늪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그 늪이란 그가 살아오던 세상, 나의 삶에 등잔불을 비춘 그의 세상.

그이의 세상은 너무나도 깨끗해서, 그것이 너무나도 눈부셔서 눈물이 흘렀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한없이 강했다. 따스했던 사람, 그의 빛에 이끌려 제 발로 들어온 우리들은 결국 이런 결말을 맞이하는 것인가. 허나 그는 없다. 그의 세상도, 그의 세상에서 살아가던 우리들은 당신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나는 살아가야만 하는가? 그를 동경하며, 사모하며 당신이 없는 세상에서 더러운 공기를 맡아가며 살아가야 하는가? 있을 수 없었다. 아아, 그이가 없는. 그이가 없는 지금의 세상을 눈 뜨고 직시할 수 없을 일이리다.

언제부턴가 당신을 가신하고 있었다. 항상 그를 받들며, 그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아나는 듯 했다. 아름다웠다. 그와 내가 함께 웃어나가던 그이의 세상은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아 항상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었다. 같은 자리에 서서, 망연히 서서 그이를 바라보며 행복을 느낀 어느 날을 기억하며 이제서야 이 말을 꺼내보리다. 그래, 이제서야 이 말을 외쳐보리다.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영원히,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당신을, 아니. 선생님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애정을 느꼈습니다. 뒤늦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왜 그 때의 나는, '그 녀석'을 원망해 당신을 사그리 잊으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나로서는, 당신이 어째서 그런 비극을 당해야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당신이 사랑했던 세상을, 당신의 염원을 저의 마음과 함께 부수려 합니다. 새장 안에 갇혀만 있던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에게 받은 검을 뽑아, 칼날을 휘두르면서 까지, 모든 것을 부수려 합니다.

선생님이 없는 세상에, 미친듯이 웃고 다니는 이 모든 사회를 저의 손으로, 나의 손으로.

「당신에게 보내는 진혼곡과 함께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반드시 부숴버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