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반타카] 최후의 두 사람

Sandel 2016. 1. 28. 14:31

 "결국 그대는 이런 결과를 바라고 있었는가."

 나의 말에 그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 고상한 얼굴에 지독하게 묻어나오는 선혈은, 이제 상황의 끝을 고하고 있었으나… 상황은 너무나도 비참해서, 감히 눈을 뜨고 볼 수 없어 애써 눈을 감는다. …이윽고 다시 떠본다. 그래, 상황은 감쪽같이 변할 리가 없었다. 매일같이 나의 위에, 정점에 자리하던 그가 어느새 나의 발 밑으로 추락할 줄은.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으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다급히 달려가보니 때는 이미 늦었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 따위는 없었다. 그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싸우나갔다. 그 누구의 힘도 없이 자신만의 검으로 휘두르며 나아갔다. 허나 그도 결국은 '한계'라는 벽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엾게도, 정해진 윤회를 어긋난 결과가 무엇도 아닌 죽음이라는 것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고 만 거다. 그는 참으로 딱한 인간이었다.

 "신스케."

 다만, 그런 인간에게 배운 감정이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반해 그새 저도 모르게 그이에게 '동경'이라는 감정을 배웠다. 죽어도 죽지 않는 모순적인 정신력, 부술 수 없는 실질적인 것들을 부숴가며 부풀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른다. 그래, 그는 결코 부숴지지 않을 사내이리라고 생각했다. 그가 부술 세상이 망가지기 전까지는, 자신의 수명이 다할 때 까지는. 그렇게 그이에게 '신뢰'라는 감정을 배웠다. 조심스레 그와 함께하는 시간을 되돌려보며, 그에게 배우던 감정을 겹쳐보니 어처구나 없는 대답이, 아니. 되려 평온한 선율이 귓전을 맴돌기 시작했다.

 고요하고도 희망찬, 미지에 갇힌 듯한… '봄'을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선율은 다름아닌 제 스스로가 지어낸 선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의미를 파악할 수 없던 노랫소리는 나를 혼란케 만들었고, 나날이 가면 갈수록 소리는 더더욱 크게,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나의 내부를 맴돌았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오는 온화한 소리에 심취해 조용히 흥얼거렸다. 아아, 이 음을 이용해 테라카도 츠우의 곡을 내보일까, 라 생각할 정도로나 아름다웠기에. 허나 그 아름다움은 얼마도 가지 못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음표와 음표 사이에 템포를 끼얹은 듯한, 클래식 위에 멋대로 자리잡은 로큰롤…. 말 그대로 이것은 '불협화음' 이었다.

 "뚫린 입이라고 잘도 말하는군, 반사이."

 "칭찬이면 달게 받으리다."

 "…반사이."

 어지럽다. 홀로 방에 틀어박혀 애태껏 달고 다녔던 헤드셋을 걷어내도 소리는 불안정하게 들려왔다. 나의 깊은 내부에서 벅차고 올라오는 이 소리는 나를 지속해서 괴롭혔다. 당연히, 그와 함께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그이와 한 곳에서 같이 샤미센을 틀었을 때일까, 샤미센을 연주함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을 헤집던 불협화음으로 인해 난생 처음으로 딱 한 번, 그와의 연주가 중단된 적이 있었다. 인상을 구긴 그의 앞에서 허둥지둥, 어찌 해서라도 연주를 다시 이으려 악기를 올렸으나 결국 이명처럼 파고드는 어수선한 소리로 인해 제대로 이어나갈 수 없었다. …아무리 마저 손으로 줄을 뜯어봐도, 그 때의 나는 어떠한 소리에 갇힌 꼭두각시나 같은 추태였기에 입을 꽉 다문 채로 그의 방에서 자리를 뜨려는 순간, 조용히 샤미센을 내려놓던 그가 자신의 아량보다 넓은 창문에 걸터앉았다. 이윽고서는 늘 그러하듯이, 유카타 속에서 곰방대를 꺼내들어 입에 물더니 이내 새하얀 연기와 함께 나의 얼굴을 응시했다. 뿜은 연기와 함께 내뱉은 말이라곤,

 '반사이, 혹시.'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마저 잇던 그의 뒷말은 하늘을 기어오르는 곰방대의 연기와 함께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짧은 회상으로 끝마무리를 지었다. 지금 내게 있어 마지막으로 남겨지는 건 그의 허무한 사체겠지. 종말을 알리는 세상에서의 살아있는 자는 나를 비롯해 한 사람. 서서히 죽어가는 가여운 자…. 그의 생명불이 꺼질 시간은 아침 해가 서둘러 뜨기 전에, 새벽을 넘어가는 시간. 그가 죽는다. 곧 눈을 감는다. 그런 생각을 되풀이하니 한 쪽 가슴이 아려왔다. 지독한 그 소리가 사라지는 대신, 고통을 맞바꾸는 듯한 느낌에 이내 주저앉아 바닥에 엎어진 그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도 가쁘게 숨을 쉬어가며 마지막 생명줄을 붙잡고 있는 그이가 나의 눈에 비춰진다. 아아, 역시. 가여워. 애석한 사람이야.

 "이런 상황에 농은 사양……."

 "네 녀석에게는… 단순한 농담, 으로, …들리겠지."

 깊게 내려앉은 칠흑 사이로 그이 버거운 입김이 하늘을 치솟아오른다. 깊고 깊은 밤의 추위는 그이마저 막을 수 없던지, 가늘게 몸을 떨며 땅에 얹은 나의 손을 힘겹게 붙잡았다. 서서히 식어가는 그의 손은 파르르 떨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고난의 역경을 제 발로 딛으면서까지, 감히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

 …그러한 그가 내게 묻는 질문이라고는 꽤나 식상한 질문이었다. 자신, 타카스기 신스케라는 존재를 사랑하고 있었냐… 고. 갑작스레 날아온 질문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간단한 이유였기에.

 "이제 곧 당신의 소리가 꺼질 시간이구려."

 나의 대답에 그는 다시 물었다. 없던 힘까지 주어가며, 한 마디의 떨림마저 끌어안은 채…. 내게 하고싶은 말이, 어디 없었냐고. 아니, 마지막 인사같은 건 없냐며…. 뒤이어 나를 향해 낮게 웃으며 대답을 기다렸다. 허나 두 번째 질문마저, 그의 얼굴을 피해버렸다. 뇌리에 박혀버린 그의 질문을 멋대로 지워버렸다. 그것도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시선을 피해버린 나의 손을 놓아버리는 그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곱게 눈을 감아버린 그이를 바라보며 다시 후회한다. 아니, 그에게 속으로 묻는다. 어찌 잘 가라는, 작별인사조차 내어주지 않고 쉽게 눈을 감아버리냐는 이기적인 질문과 함께 그의 손을 붙잡았다. 완전히 차게 식어버린 손을 나의 손으로나마 온기를 전해준다면… 아아, 가망은 없었다. 신은 이미 그의 곁을 떠나버린 거다. 그는 이미 죽었는데, 온 몸이 서서히 굳어가는데… 아니, 아니야. 잠시나마 생명불이 붙어있을 거다. 대화를 거부한 내게 농담따먹기를 시도하고 있을 터다.

 "신스케."

 황급히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의 손을 만져본다. 그의 볼에 손을 얹어본다. 차갑다. 꽁꽁 얼어있다. 겨울을 불러들이는 그의 몸이었다. 이는 그의 죽음을 알린다. 굳게 눌러붙은, 백골처럼 하얗게 묻어나는 그의 피부에 뒤늦게 부정한 현실을 자각한다. 그렇게, 그렇게 한없이 그의 이름을 불러가며 손으로 천천히 그의 몸을 쓸기 시작했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증언을 찾기 위해, 세우기 위해. 허나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서서히 치밀어오르는 물방울로 인해 마저 진행할 수 없었다.

 그래, 그것은 눈물이라고 하는 존재였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나는 눈물을 흘려가며 그의 이름을 울부짖고 있었다. 다시금 꼴좋다는 듯이 불쾌한 타이밍에 튀어나온 사나운 불협화음은 나의 귓전을 맴돌고 있음에도 아니하고 내게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 그가 죽었다. 라는 생각밖에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소리는 항상 그의 앞에서도, 그의 생각을 할 때마다 울려퍼지는 소리임을 자각하고 있었으니까. 이름도, 영문도 알 수 없는 화음은 퍼붓던 눈물이 젖어들고 나서야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니, 이 소리는 이제 영원히 들리지 않을 거다. 감히 찾아오지 못할 거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소이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뒤늦게 배워버린 살인귀의 발악하는 선율은 이제 여기서 마무리를 지을 것이기 때문이기에, 마지막의 잔잔한 불협화음과 함께 그에게 안녕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