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살아있다는 이유로 나는 그에게 몹쓸 짓을 도리어 반복했었다. 더러운 진드기처럼 그의 곁에 달라붙어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게 눈치를 주던가, 가장 중요한 학생회의 일을 병약하다는 이유로 그럴듯한 핑계를 내세운 채 그를 끌고 밖을 나온 적도 있었다. 절대 이해할 수 없을 법한 나의 행동에 그는 당연히 의문을 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불화살처럼 뿜어낼 듯한 독기를 내게 쏘아내지 않은 채 조용히 웃으며 함께 있어줄 뿐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시원스레 넘어가주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좋았다. 그는 나의 응석을 받아주었고, 차디찬 나의 손을 잡고선 따스히 녹여주었다. 그와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영원히 시간 속에 갇혀 벗어날 수 없는 마법이 있다면, 그와 함께 모든 것을 떨치고 재미있는 일들을 함께 그려갈 수 있을 터였다. 허나 시간이란 작자는 너무도 가혹했다.

  째깍이는 회중시계를 지나 그와 숨을 겹치면 겹칠수록, 그와 맞잡은 손을 강하게 잡으면 잡을수록, 묘하게 불어오는 야릇한 산들바람이 나와 그를 스치고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는 나의 멋대로인 행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그래, 나는 그가 받아들이는 이유, 가엾은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이 움직이는 강렬한 스킨십을 떨쳐낼 수 없었다.

  “에이치…?”

  이는 변함없이 오늘도 마찬가였다. 뼈저리게 쑤시는 고통을 삼키고 학교에서의 일을 급하게 매듭짓고 슬슬 마무리를 짓는 그를 끌어냈다. 본능, 그저 기분나쁜 본능을 따라, 저보다 두터운 그의 손목을 붙잡고 도착한 곳은 남들 눈에 쉽게 띄지 않을 법한 좁은 골목길이었다.

  제발, 제발 정신차려. 텐쇼인 에이치.

  침착하게 안경을 치켜올리던 그를 벽으로 밀어냈다. 가늘한 진동이 그의 짧은 신음을 불러들였다. 허나 미세하게 들리는 숨소리는 오래 전부터 제 귀를 자극했을 지도 모른다. 나의 이기적인 행동은 그를 당황으로 몰아갔다. 그는 저를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리며 동공을 미세하게 흔들었다. 아무리 침착한 페이스라 한들 이런 상황에 무슨 마이페이스란 말이던가. 그의 당황스런 표정에 절로 웃어보았다. 약간의 억지웃음이 섞여든 애석한 웃음이었다. 웃음, 서늘한 정적을 유지한 채 그에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케이토.”
  “정말 미안해.”

  벽에 등을 붙이곤 자동적으로 나를 피하려 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앞에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의 머릿결을 쓸어내렸다. 뜨거운 땀에 섞여 물들어진 녹색의 머리카락, 부드러운 감촉에 싱그러이 웃어보았다. 그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예민한 눈동자로 나를 훑어보았고, 파고드는 애매한 감정에 정신팔려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은 그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거 있었다. 아아, 미친 짓이다. 이 한 번의 끝으로 영영 그를 잃을 지도 몰라. …역시, 그러하겠지. 그이는 나를 친구로 생각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양이겠지.
  ……괜찮아, 아무렴 뭐 어때?

  “날 용서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덧없는 욕심을 지워내려 했다. 그것은 괴로이 부풀어오르는 심장이 모든 것을 부정했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욕심에 사로잡혀 이성마저 날아간 친구와의 입맞춤. 남자와의 애절한 키스신. 나는 나를 떨쳐냈다. 허나 눈을 떠보았을 때, 나의 입술은 그의 입술을 겹친 채 물컹한 액체를 놀리고 있었다. 여린 신음을 내며 몸을 떠는 그를 외면하고 그의 내심을 자극하려 했다. 다시금 눈을 감았다. 넋놓고 잃은 이성은 결국 되찾을 수 없었다.

  그래, 역시 되돌릴 수 없었던 거야. 미안해, 미안해. 흘러버릴 듯 내빠지는 투명한 액체가 그의 숨결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Posted by San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