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직, 치익── 칙, 어젯밤 xx해안가에서 보라색 비늘이 발견 되었다고 합니다. 사건 현장에는 비늘을 목격한 사람과…… 뽁, 티익. 노이즈만이 가득한 고물 텔레비전의 전원을 차단했다. 콘센트를 뽑았음에도 잔잔히 흐트러지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리모콘은 이미 일주일 전에 고장났고, 그것을 고치기에는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건 전부 부모님으로 인해 억지로 시작된 지옥같은 자취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조차 마찬가지로, 이전 집에 있던 헌 것을 가져왔고, 신세대라고 언급될 물건조차 없는 이 곳이 나의 집임을 스스로 인정하기 싫었다. 잔혹한 부모님, 야비한 부동산 중개사. 곧장 그들을 탓하기에는 먹고 살아갈 생활비가 없었다. 생활비가 없었다. 생활비가 거덜났다. 나는 지금 그것이 중요할 따름이었다.
일조차 내게 등을 져버린 지 오래였다. 텔레비전 하나가 나의 전부였던 판국에, 아르바이트조차 인원이 다 찼다며 거부하는 쪽이 늘었다. 되려 애당초 뽑고 싶지 않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면서까지 나를 밀어냈다. 분명 그것은 황토색으로 바랜 나의 흰 티셔츠와, 세일을 통해 겨우 얻어낸 츄리닝 바지, 질질 끄는 슬리퍼가 원인일 터다. …아아, 알면서도, 알고 있으면서도, 괴로웠다. 허나 나의 감정을 분출할 수 있을 법한 상대는 어디에도 없었고. 짐을 싸서 부모님에게 다시 돌아가기에는 화산처럼 터질듯한 그들의 타박은 겪고 싶지 않았다. 그저 꿈, 나의 염원, 그것이 걸림돌이라며 장난감 버리듯 나를 내팽겨쳤다. 그렇기에 두 주먹을 꽉 쥐고, 아무도 듣지 못할 혼잣말을 눈물과 함께 엮을 뿐이었다.
나는 살아남을 거야. 나락같은 현실, 되감을 수 없는 과거, 그 사이에서, 나는.
노래할 거야. 누구보다도, ──날지 못했던 미운오리새끼처럼. 나의 굳센 의지에는 여러 반론 섞인 반대의 소리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런 추잡한 목소리로는 노래할 수 없다며, 노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그렇기에 나는 그들의 싫은 소리를 노이즈라 여겼다. 무슨 말이든, 일리있는 말이더라든, 나는 외면했다.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버티고, 참고, 견뎌내었다. 그러더니, 가슴 속으로 우러나오는 소나기는 툭, 툭, 투둑, 후두둑. 이상하게도 이미 지쳐버렸다며, 어지러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첫시작은 가시처럼 따갑고, 창살이 심장을 파고들듯, 괴로웠다. 어찌 해서든 늘 하던대로, 그럴듯하게 견뎌보니 이리도 찬밥 신세를 얻게 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 그것도 어떠한 지원조차 없이, 나의 힘으로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앞으로의 계획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노래를 한다. 오직 마이웨이. 언제나 될 대로 되라, 그것이 카게야마 토비오의 방침이었다. 허나 오늘만큼은 조금, 일방통행의 과녁이 빗나갔을 지도 모른다.
최근 내게 관심사가 생겼다. 아마 돈과 관련 되었을 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정의하자면… 비늘, 인어, 비늘, …인어의 비늘이었다. 모든 인간이 증오하고, 경멸하는 인어 말이다. 이유는 그저 외모라던가, 생선처럼 푸득이는 인어의 꼬리 때문이라고는 하나, 나의 관점은 조금 달랐다. 인어를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하여금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순한 호감 뿐이었다. 그중에서 인어의 비늘을 발견한 이들은 전 세계에서 놀아나는 억만장자가 된다거나, 유명한 이름의 대학 명찰을 달고 다닌다던가… 갖잖은 소문으로 주변에서 조잘대기도 했다. 그것이 아주 잠깐, 아주 잠시, 거슬릴 뿐이었다. 뉴스에서도 인어의 비늘을 발견했다는 등의 시시한 내용이 나오는 것은 아마 훗날부터 밥먹듯이 떠도는 소문이 그 이유였다.
‘카게야마, 그거 들었어? 인어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다는 걸 알아챌 때, 자신의 신체부위와도 같은 비늘 하나를 떼어, 지평선 너머로 띄워 보낸대. 그리고 그걸 주운 사람은, 어떤 소원이든 지늘을 향해 외친다면── 딱 하나만 들어준대.’
소문이라기보다는 전설로 알려진 이야기는 태생 이전부터 쭉, 이어져 있다고 한다. 심지어 최근 인어의 비늘을 발견한 사람의 횟수가 늘고, 인어를 잡아다 경매시장에 올리거나 비늘을 떼어가는 ‘머메이드 포획단’ 조직이 종종 떠돈다고 하더라. 허나 너무도 황당스럽게, 그들의 서식지라 치면 바다 주변. 그것도 바다를 등지는 우리집 주택가 앞에서 말이다. 아무리 포획단이란 거장한 이름을 달아도, 인간은 인간인 것이 흠이었다. 새벽마다 큰 소리가 울리고, 군대에서나 쓰이는 소총 소리가 들리고… 그래. 전부 민폐라고 치자.
응어리로 뭉친 생각의 보따리는 결국 한쪽 방구석으로 던져놓은 채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오고, 가장 먼저 보이는 촘촘한 벽돌 계단을 밟으니, 벌써부터 눈에 확 트이는 모래사장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머나먼 동쪽에서 비추는 태양에 적셔 은은하게 빛나는 모래를 밟았다. 오늘도 밟았다. 늘 그렇듯이, 푹, 푸욱. 언제나 들어도 반가운 소리였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파도없는 바다와 모래가 겹쳐 출렁이는 소리, 저만치서 아무렇지 않게 데굴데굴 구르는 쓰레기 더미… 모두 익숙한 광경이었다. 모든 것이 내게는 익숙하고, 사랑스러웠다. 이것이 현실을 외면할 수 있는 나의 세계이기도 했다. 더위에 미처 아무도 오지 않는 사람, 바람조차 숨을 죽인 매서운 모래사장, 그리고 바다. 흰 오로라가 돋구는 푸른 바다. 마치 팔레트에 짜여진 짙은 푸른색의 물감과도 똑띠 닮은 자다가 눈동자에 들어왔다. 그리고 저 멀리, 바다 전체를 차지하듯 뛰어 오르는 돌고래 하나가 연출을 장식했다. 물론 이 바다에 떠도는 돌고래가 있을 리 없지만 말이다. ──어라, 돌고래, 하나?
“…뭐야, 저거?”
나의 숙덕이는 소리로도 저것에는 닿지 않았다. 닿을 리가 없었다. 저리도 멀리 있으니, 손을 뻗어 잡아보기에는 내 자신이 한참이나 무식해보였다. 허나 저능아가 아니기에 확실히 자각할 수 있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래, 저것은 돌고래가 아니라는 것. 뛰어오르기를 멈춘 저것은 동작을 멈춘 채 중심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손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 …좌우로 흔들었다. 아아, 마치 내게 인사해주는 것처럼.
다시 한 번 깨닫기를, 저것은, 그것은 분명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카게야마. 너는 인어가 있다고 생각해?’
시력이 좋았던 탓일까, 돋보기처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뛰어오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인장처럼 속은 말랑말랑하면서도, 건드리먼 푹 찌를 것 같은 삐죽삐죽한 주홍빛 머리카락. 뽀얀 상체, 그리고 파랑, 파랑, 바다와 어우러진 보석같은 파랑색의 비늘, 지느러미처럼 흐느적거리는 뾰족한 꼬리. 꿈이라고 하기에는, 이를 꿈이라 말할 수 없었다.
‘인어?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전부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야. 동화와도 같은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그의 모습에 놀라 털썩, 푹신한 모래사장 위에 주저 앉았다. 거짓말이 아니야. 스스로 그가 존재함을 실감하려 고스랗게 모여진 모래를 손으로 긁고, 긁었다. 거짓말이야. 스스로 그의 아름다움에 수긍하려 고개를 푹 숙여본다. 그리고, 거짓말이 아니야. 현재 상황을 받아 들이려 고개를 들었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더위가 두려워 발을 들이지 않는 사람도, 새벽에만 활동하던 포획단도, 바다에 휩쓸려간 조개 파편도, 그리도 아름다웠던 인어 하나도. 남아있는 것은 조금만 더, 하고 그에게 다가가고 팠던 나의 후회가 울렁이는 바다 소리와 함께 파묻혀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