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의 파릇파릇한 나이, 담배를 피기 시작한 것은 무더위가 뺨을 내치는 7월 중순이었다. 아마 하나뿐이었던 누님이 사라진 이후였을 거다. 공교롭게도 처음에는 담배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저 너머로 또래 녀석들이 골목길 사이로 피우는 담배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남몰래 혀를 찼던 때가 있었다. 허나 그것은 누님이 순수로 가장한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런 짓은 하면 되는 거야. 라 내게 상냥하면서도 따끔한 충고를 주었던 시기의 이야기였다. 누님의 말씀대로 담배를 피우는 이들을 증오했고, 아니. 되려 누님의 말을 떠올리며 피하는 일에 바빴을 터였다. 그저 누님의, 그녀의 칭찬을 듣고파 무릇 피어오르는 호기심을 접은 채 눈을 돌렸다. 그녀에게로 눈을 돌렸다. 허나 오로지 나를 향할 줄로만 알던 그녀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아니.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죽음이란 단어 앞에 그녀는 나를 놓고 허공을 향해 손을 저었다. 누님은 죽었다. 더는 만날 수 없었다.
  편안히 잠들어 있는 누님을 바라보았을 때,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와 같지도 않은 슬픔을 지닌 이들을 바라보며 상실감을 느꼈다. 아니, 나와 같으면서도 별개의 감정을 지녔던 어느 누군가를 제외하면 전부 마찬가지였다. …역시 아무도 내 감정을 꿰뚫지 못할 거다.
  그래, 깊은 상실감에 그녀의 말을 한순간에 잊은 채 담배를 손에 쥐기 시작했을 거다. 누구보다 평범한 옥상, 꽉 막힌 철창 너머로 더러운 니코틴을 허공에 뿜어내었다. 허공을 타고 오르는 나의 연기는 어느 순간 더운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불쾌감은 없었다. 그저 이런 식으로 하면 그녀가 다시 나를 충고하러 오지 않을까, 미친 망상이 머릿속을 휘돌았다. 머리가 아팠다. 이것을 피고 나면 밀려오는 어지러움이 나를 바닥으로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또 피는 거냐, 해? 완전 양아치네.”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방해꾼이 나타나 꾸준히 피고 있는 막대기를 뺏어 제멋대로 밟아버리기 마련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뱅글이 안경, ‘학교’라는 개념을 잃어버린 츄리닝 바지를 보면 양아치는 내가 아닌 그녀에게 걸맞는 표현일 터다. 허나 그녀는 흰 실내화로 담배를 짓궃게 밟이버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그녀에게 뭐하는 짓이냐며 불안조로 소리쳤으나, 그녀는 저를 응시하지도 않은 채 재가 식은 담배를 밟으며 입을 열었다.

  “누님이 이런 널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넌 참 이상한 녀석이다, 해. 절대 피지 않겠다며 내 앞에서 큰소리 친 지가 언제고….”

  울먹이는 듯한 그녀의 표정은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안경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다. 담담하게 이어졌더니, 쉽게 일그러지는 그녀의 목소리가 어째서인지 나를 지탱해주는 것만 같았다. 부서져가는 나의 파편을 그녀가 주워담는 느낌, 이랄까. 그녀의 표정이 보고 싶었다. 가라앉은 목소리를 더한 울음기가 느껴졌기에, 손을 뻗어 그녀의 안경을 조심스레 내려보았다. 기스가 나지 않게, 갑작스레 다치지는 않을 정도로의 강도로 그녀의 의문을 뒤로한 채 내린 안경 너머로 울적해진 그녀의 표정이 나를 일그러뜨렸다.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허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을지도 모를 터다. 그녀는 변함없이 그녀였다. 매일 이런 안타까운 타이밍에 벅차고 들어오는 것만 아니라면 전부 괜찮을텐데, 결국 픽 웃으며 그녀의 볼을 살짝 늘려보았다. 떡처럼 옆으로 늘어지는 말랑한 볼의 감촉이 너무도 좋았다.

  “왜, …왜! 뭐!”
  “차이나, 우리말야.”

  키스할까? 라 하면 분명 소리치며 도망가겠지.

  “담배나 필까?”
  “이거 진짜 맛탱이 간 거 아니냐, 해?”
  “농담을 진담으로 듣냐? 멍청한 게 따로있네.”

  눈앞에 그녀를 바라보며 뒷주머니에 고스란히 넣은 직사각형의 곽을 꺼내 몰래 바닥으로 떨구었다. 여전히 타들어갈 것만 같은 여름의 날씨가 나를 초조하게 애태우고 있었다.


Posted by S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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