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하스미 케이토

   안녕, 지금쯤 네가 이 편지를 읽을 즈음에 나는 이미 네 곁이 아닌 커다란 병원에서 호리호리한 껍데기를 누군가들이 옮겨가고 있을 거야. 분명 나는 눈을 감고 있을테고, 너는 이미 병실에서 빠져나와 네가 있어야 할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겠지. 아아, 그렇다고 해서 이 쪽으로 다시 돌아오지 말아줘. 너에게는 내 모든 모습이 같을 지라도, 지금의 나를 네게 보인다면 창피해서 너를 반기지 못할 것 같아. 그러니 너는 부디 앞을 향해 걸어줘. 무엇이 제일 소중한 지를 생각해줬으면 해. 아무래도 그것만을 바래야, 나아가는 너의 곁에서 손을 떼어낼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있잖아, 케이토. 나는 이 편지를 멈추고 싶지 않아. 그저 백지 위에 글씨를 써내려가는 것 뿐인데도, 이 편지에서 손을 놓고 싶지 않아. 설령 엉망진창에 제멋대로의 모든 감정을 실어 자아낸 어설픈 편지더라도, 너를 생각하면 나는, ……미안해. 감정이 격해져버렸어. 글씨도 삐뚤어졌어. 이럴 때 네가 내 옆에 있다면, 에이치! 글씨가 이게 뭐냐! 라던가, 틀림없이 나를 구제불능이라 하면서 네가 대신 내 옆에 앉아 너의 글씨를 덧붙였을 거야. 일상생활은 물론이요, 학생회 일을 할 때나 마찬가지로 너는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보좌해주었어. 돌봐주었어. 꼭 선반 위에 닿지 않은 책을 대신하여 잡아주듯이, 너는 상냥하고, 툴툴거리면서도 무엇이든지 해주는 영웅과도 같았어. 그래, 나는 너를 동경하고 있었을 지도 몰라.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너의 모습을 부러워했고, 주변 이들의 신뢰를 사로잡는 너를 질투했었어. 그래서 시도때도 없이 나는 너에게 말했었어. 부럽네, 케이토. 기분이 어때?

  하고 싶었던 말은 언제나 햇빛이 구름에 가려지듯 틈새를 내어주지 않아. 흘러가는 구름에 바뀐 잿빛 풍경은 나를 둘러싸고, 햇빛을 대신하여 내어주는 소나기는 나를 괴로이 만들어버려. 그리고 말하게 돼. 그동안 너에게 쌓여온 감정, 모순적인 말투, 풍선처럼 부푸는 자기혐오. 너라는 이유로 나는 한 번, 너를 괴롭히려 했어.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네가 미더워 이질적인 복수를 시도하려 했어. 하지만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다시 돌아가자며 마이 페이스를 되찾았을 때는 너무도 늦어버렸어. 왜냐하면, 입술과 입술 사이로 드리우는 타액은 억지로 서로를 알아가려 했고, 너의 상체는 이미 새빨간 자국이란 이름의 나를 채워가고 있었으니까. 그 때의 너는 울고 있었어. 부탁이니까 하지말아줘. 에이치, 에이치. 손을 뻗어 제 등을 붙잡고, 상기된 얼굴로 싫다며 나를 밀어내었어. 분명 내가 멈추었다면 나는 말했었겠지. 미안해, 너의 이름을 부르며 상황을 원 위치로 되돌려놓겠지. 하지만, …미안해, 그 뒤는 기억할 수 없어. 기억이 나지 않아. 미안해, …미안했어. 진심이니까.

  이 때 와서 보니 너에게 말하지 못한 말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어. 아마 마지막, 이라 그런 거려나. 아아, 화내지 말아줘. 분명 우리는 약속 했었지? 절대 마지막, 은 꺼내지 말자고. 어릴 때의 약속이니까, 너는 기억하려나? 그런데도 말할 수밖에 없었어. 정말, 이것이 마지막이야, 케이토. 처음이 있으면 마지막도 있는 거야. 그것이 한참이나 빠른 마지막이라는 게 문제지만 말야.

  케이토, 너는 들리지 않겠지만, 병실 너머로 소리가 들려오고 있어. 나는 이 소리를 알아. 당연하게도, 간호사들이 카트를 끌고 걸어오는 소리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이끌려 가야만 해. 나는 하고 싶지 않다며 말했는데도, 이것이 나를 기적이라 끌고 갈 일이라며 오히려 기뻐하고 있어. 아니, 늘 그렇듯이 나를 폐롭히고 말아. 그럼에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어쩌지, 케이토. 나,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어.

  나는 줄곧 생각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그 끝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을. 운이 좋은 사람에게는 염원을 얹어주겠지만, 운이 없으면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아. 케이토, 나는 어느 쪽일까? 어째서 나는 너와 같은 운명이 아닌 걸까? 왜 사람은 같은 길을 걷는다 해도, 굳이 두 갈래,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야만 하는 거야? 이해할 수 없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 케이토,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못해본 것들이 잔뜩 널려있어. 케이토 나는. 나는, 살고 싶어. 한 번도 믿어본 적 없는 신께서 내게 살아갈 기회를 준다면 나는 그 신을 영원히 찬양할 수 있을 것만 같았어. 그리고 뒤돌아보니 겨우 깨닫고 말았어. 아니, 언제부턴가 바라고 있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어. 그리고 이리 말해보고 말아.

  케이토, 훗날부터 간절히 소원했던 신이 너였으면 했었어.

 

 

 

  결말은 찾을 수 없었다. 세 장이나 넘어선 그의 편지를 받았을 때는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었고, 그의 손떼 묻은 편지 한 장조차 모조리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적셔야만 했다.

Posted by S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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