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언제나 평범하고, 언제부턴가 잊을 수 없는 피날레와 함께 매듭을 짓는다. 그렇게 생각한 건 사카타 긴토키의 죽음이 조그마한 땅을 울렸을 때일 터다.  
  그의 죽음은 허무했다. 허무함을 떠나, 텅 비어지듯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사카타 긴토키의 소식에 모든 사람들은 쏜살같이 달려왔다. 마치 대진표를 보기 위해 달려온 싸움꾼처럼, 한 치의 망설임조차 거둔 채 그에게로 걸음을 놀리지 않던가. 허나 이들이 달려오기 전, 상황은 이미 한계를 뛰어 넘었다. 죽기 전까지의 그는 한 마리의 들짐승과도 같았다. 고작 장난삼아 뱉어본 협박 하나에 그리 매달릴 줄은 어느 누가 알았으랴. 다시 그려보자니,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나의 협박은 아마 이러했을 거다.  
  ㅡ카부키쵸는 곧 하루사메의 서식지가 될 거야. 나는 기억했다. 사소하고, 시답잖다고 여긴 한 마디에 검을 붙잡고, 무섭게 달려들었다. 나를 밀어냈다. 마치 멧돼지 하나가 우람한 나무를 꺾으려는 듯, 자신의 터를 지키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의 모습을 부정했지만 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라 과거를 되새기기에는 두 걸음이나 늦어졌다. 애당초 어리석은 것은 나였다. 나는 그를 죽였다. 사카타 긴토키는 나의 모든 것을 거부했다. 우스꽝스러운 이유는 나를 뒤집고, 숨을 조였다.  
  점차 그들의 통곡 앞에 등을 돌렸다. 도망쳤다, 고 해야 옳겠지. 평소와는 달리 그럴듯하게 나아가야 할 것을, 걸음은 뒤를 향했다. 그렇게 뒤로, 뒤로… 좁은 보폭이 어느 순간 그와의 거리처럼 넓어지고 말았다. 느릿한 걸음이 갈피를 잡지 못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뛰었다. 숨이 가빠지지 않았다. 그러니 지리조차 알 터가 없는, 사람이 살지 않는 어딘가로 달려가려 했다. 그의 죽음과 살인의 범인을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우고 싶었다. 허나 무작정 지우려 해도,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내부의 굴뚝의 검은 연기는 싫은 것들을 꺼내 올렸다. 그리고 높고 높은 파도처럼 나를 덮었다. 더이상 그 무엇도 나를 절망의 품으로 인도하려 손을 내밀었을 때, 그들을 제치고 나의 주변을 빙빙 맴도는 어지러운 것이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결코 장난 따위가 아니였다.

  ‘나는 너를 받아들일 수 없어.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이야.’  
  ‘카무이, 유감스럽지만 남자와 남자는 이루어질 수 없어.’  
  ‘대신 하나만 약속할게.’

  만일 내가 너를 증오하게 되더라도, 내 흔적은 너를 찾아 붙잡을 거야. 반드시.
   연푸른 색과 하얀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나비. 이는 내게 인사를 하듯, 어지러이 제 주변을 허우적거렸다. 그야말로 사카타 긴토키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그가 뱉었던 말의 의미는 착시현상(나비의 뒤를 따르는 오로라)처럼 보이는 환상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다시 한 번,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렸다.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범인은 양 손을 타고 진득하게 흐르는 붉은 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덧없는 자태를 뽐내는 나비를 바라보았다. 푸르고, 흰색을 띄운 호랑나비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렇기에 괴롭고, 버거워서, 그라는 이름의 추억이 나의 몸을 억누르고 있었다. 정녕 저 나비가 그이라면, 거짓말이라며 들이닥친 현실을 부정해야만 했다. 아니라며 고개를 세게 저어야만 했다. 허나 푸르고, 뚜렷하지 못한 나비는 나를 동정하고 있었다. 피하지 않았다. 억지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듯이, 나와의 거리를 가까이 했다. 그리소 느릿하게 나의 눈동자 위에 자리를 잡았다. 마치 이전과 별 다를 것 없는 그의 모습처럼, 울지마. 라며 울보 취급하고, 어쩔 수없이 달래어주는 것처럼.

  “왜 나타난 거야?”

  울보 취급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애당초 나는 울보가 아니였다. 슬플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을 알려준 사람은 그이였다. 고작 쉴 새 없이 날갯짓을 보이며 눈엣가시로 보이는 작고 약한 생명체에게 위로 받고픈 목적은 아니란 말이다. 이해할 수 없었다. 허구로만 가득한 상황을 알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있는 총 지식을 동원해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고장난 로봇이 된 것처럼.
  지금까지 여러 사람을 죽이고, 죽였던 로봇이 그를 만나 점점 망가지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더는 고칠 수 없을 불량품이 되었다. 심장이 북치듯 뛰어 오르고, 새로운 감정이라는 물건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을렁거리는 가슴에 쓰라리는 것은 아프다는 감정을 표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쌓여온 감정은 액체가 되어 눈동자에서 장맛비를 떨구고 있었다. 눈물이라는 것이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로봇은 괴로워했다. 바야흐로, 나는 그 괴로움에 버거워 떨군 고개를 다시 들어 올렸다. 어째서인지, 눈동자에 앉은 나비의 모습이 가려져야 할 것을, 훤히 드러나는 것처럼 비추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 외면하려 하니, 어느덧 내 눈앞에는 하얀 오로라를 띄운 그의 모습이 눈을 마주하며 웃고 있었다. 환히 웃고 있는 얼굴은 내게 말해주었다. 거짓말이 아니야, 허구 따위가 아닌 그가 살아있을 때처럼.
  눈동자 위에 가라앉은 푸르고, 투명한 나비는 아무리 온 몸으로 실감하려 해도 실감할 수 없었다. 얇은 폭포처럼 내리는 내 눈물에 휩쓸려 간 것처럼, 푸르고 하얗게 조화를 이루던 나비는 어느덧 돌아올 수 없는 곳을 향해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환영마저 눈에 녹아 사그라지듯, 흔적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남은 것은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었던 환희, 그는 나를 버리지 않았어. 라는 망상에 버거운 웃음. 그리고,

  “아아, 이게 말로만 듣던 하루사메의 거물이던가? 토시.”  
  “아니죠, 곤도 씨. 하루사메의 거물은 너무 거창하잖아?”

  사카타 긴토키를 살해한 간 부은 괴물이지. 그가 웃던 자리에는 세상 모든 분노를 이끈 누군가가 있었다. 사뭇 다른 분위기의 그는 내게 검을 지켜 들었다. 드리우는 그림자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그의 눈물과 함께 마지막을 가꾸었다.
Posted by S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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