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스미 케이토, 그가 죽었다. 몇몇 이들의 슬픔과, 고통 섞인 애도를 표하고 나니 가을은 이미 끝나 있었다. 굵직한 나무에 매달렸던 치렁치렁한 열매는 남모르게 후두둑 떨어지고, 샛노란 은행잎이 아래를 향해 힘없이 추락했다. 마치 신이 내려주는 하얀 눈처럼. 모든 나무에서 노란 눈을 내려주었다. 그와 어울릴 리도 없는 색의 눈잎이었다. 나는 처량한 눈을 밟았다. 노란 눈을 밟고, 노란 열매를 총총 피해, 걸었다. 왼발, 오른발을 내밀 때마다 노란 눈은 바스락, 바스락, 부르짖는 발악에 뒤로 자빠졌다. 그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소리는 커져만 갔다. 은행잎이 밟혀, 굴러가는 소리로 시작해, 바스락, 바스락. 사각, 사각. 매서운 바람이 어우러지는 소리. 휘이, 휘이. 휭, 휭. 자잘하게 떨려오는 노이즈에 심장이 울렸다. 쿵, 쿵. 쾅, 쾅. 쉴 틈없이 반복되는 방해꾼은 내 발목을 잡았다. 아아, 시도때도 없이 유난스런 방해꾼을 붙잡으려 하면, 언제나 그렇듯 나의 머릿속은 그의 모습들로 가득해진다. 마치 스쳐지나가는 주마등처럼.
  하스미 케이토, 그의 죽음은 불명이었다. 주워들은 얘기로는,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 그것이 전부였다. 어떤 이야기조차 자아낼 수도, 실현할 수도 없는 교통사고였다. 피해자는 그이, 가해자는 도주. 상황을 목격한 사람, 그를 발견한 사람, 아무도 없었다. 그의 죽음은 허무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들은 전부 모순이었다. 그의 이름을 알린 장례식장, 검은 띠를 둘러싼 그의 학생증 사진. 그리고, 이름 모를 공허함. 그리고,

  “여기가 너의… 아니, 너희들만의 연습실이구나.”

  그의 죽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몇 년이든, 몇 천년이든, 내가 죽고 나서의 세상이든, 시간이 지나면 아스라이 잊혀지고 말 것이다. 그것이 이 세상에 주어진 현실이었다. 그것을 순응하는 이들이 바로 인간이었고, 받아들이는 것조차 능숙한 이들이 바로 인간이었다. 그의 죽음을 동물처럼 받아들인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 너라면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휑한 연습실 안에는 한 벽을 매운 연습용 거울, 미끌미끌한 바닥, 그리고 평범하게 서서 숨을 쉬는 그가 있었다. 그의 얼굴은 땀방울과 땀줄기로 장식되어 있었고, 숨을 헐떡이며 제 뒤에 있는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걸어왔다. 이전과 달리 조금 벌어진 동공, 의아한 모양으로 나를 맞이했다. 내게 다가왔다. 터벅, 터벅. 삐걱, 삐걱. 바닥과 마찰하는 그의 흰 운동화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귀를 움츠렸고, 무슨 일이냐며 제 호칭을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나의 신경을 죽였다. 이윽고 분노를 일으켰다. 세포 하나, 하나가 그를 향해 봉기를 들었다. 곧장이라도 죽일 기세로, 달려들려 했다. 아아, 그렇게 달려들었다.
   나는 지옥 열차에 뛰어 들었다. 고작 사람의 목숨 하나, 나의 목숨을 맞바꾼 정도로, 괴로웠다. 나의 고통은 살을 파고, 뼈를 조각조각 으깨었다. 그이도 그럴 것이다. 같은 심정임을 알기에, 심판할 수 있었던 거다. 지금 제 앞에 있는 그를 응징할 수 있었던 거다.

  “키류 쿠로, 너는 가해자야.”

  케이토를 죽였어, 죽였다고! 나는 양 손으로 그의 목을 붙잡았다. 꽈악, 힘을 주었다. 죽은 그이의 한이 배반되어 전해지게끔, 살의를 표했다. 평소대로 웃으려 해도, 웃을 수 없었다. 마이페이스는 온데간데 없이 도망치고 말았다.
   그는 괴로워했다. 고통스런 짧은 신음을 이으며, 자신의 손으로 목을 둘러싼 나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 거울 쪽으로 뒷걸음질을 이어나갔다. 허나 그는 나를 잡았다. 나를 받아들였다. 나를 수긍했다. 제 손에 얹었던 손을 옮겼다. 그리고 나의 양 팔을 붙잡았다. 바들바들 떠는 그의 손은 나를 놓지 않으려, 있는 힘껏 꽉, 살갗이 으스러질 정도로 나를 붙잡았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 수준을 넘어, 그를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텐…쇼인.”

  헐거운 목소리, 금방이라도 숨이 끊겨질 법한 그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목을 조였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나의 괴로움은 영영, 그의 목을 조여도 닿지 못할테니까. 어느덧 나에게도 한계가 재해처럼 들이닥치고, 힘빠진 양 손을 테이프처럼 휘감으려 할 때, 뜨거운 무언가가 손등에 닿았다. 그리고 주르륵, 미끄럼틀을 타듯 느릿하고 빠르게 흘러내렸다. 나의 손등을 타고 시선을 천천히 위로, 위로 올려보았다. 나로 인한 고통인지, 무엇인지 모르는 그의 눈물이 턱을 타고, 나의 손등을 흠뻑 적셨다. 아아, 그는 울고 있었다. 힘없이 울고 있었다. 죽어, 죽어, 죽으라는 나의 혼잣말을 모조리 외면한 채. 투둑, 투둑.

  “언제까지 서로를 가해자라 여겨도 변하는 건 없어.”
  “그걸 잘 아는… 텐쇼인, 너도 마찬가지잖아…?”

  이제 그만하자. 눈물과 동시에 흘러내리는 그의 목 맨 목소리에 손을 놓았고, 그를 놓아버렸다. 그러더니 거울 속의 나는 투둑, 툭. 목놓아 울고, 서럽게 울었다. 아무도 달래어주지 않는, 그이가 없는 연습실 안은 두 사람의 흐느낌이 애처롭게 울려퍼졌다.
Posted by S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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