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는 어디, 흑백에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지금 당장이라도 눈이 핑, 돌 것만 같아 괴로워진다. 이런 곳에서 영원히 갇혀야 한다는게, 이상해. 이상해서 화가 나. 그저 이 안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만 봐야한다는 게, 너무나도 웃겨서 끓는점을 찾기 시작한다. 분노의 시초를, 원통하다. 빠져나가려 해도 벽을 두드려도, 주먹을 써봐도, 철쇠보다도 단단해 되려 손이 아파올 뿐이다. 공간은 넓다 싶어도 몸이 굽혀져 발을 쓸 수 없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건 이 맛간 입술과 애원을 청하는 두 손. …지금 나는 갇혀있다. 살아갈 수 없는 흑백의 공간, 정사각형의 육면, 이 숨막히는 공간에서.

나를 가둬놓은 사람의 정체는 확연히 알고 있다.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 재갈이 물려있지 않아 다행일 망정이지, 그는 비통한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을 한꺼번에 쓸어모아 선택한 실험대상에게 몽땅 부어주는 그런 잔인한 사람. 이번 실험 대상은, 전체 한 사람 중에서 그 한 사람. 나, 나는.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혀줄까?"

절대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속박된, 가엾은 존재다. 내게 빛이란 없다. 빛도 없고, 희망도 없는 이 어둠 안에서 그저 위태롭게 지새우며 저 너머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 그게 정녕 내가 해야 할 '숙제' 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참 웃기기도 하지, 누구는 갇혀있는데, 저 사람은 속 좋게 자판이나 두들기고 있다니. …저런게 내 박사라고, 내 빌어먹을 박사라고…

"타케야 하치자에몽!"

칭해야 하는건지.

"왜 불러?"

성갈도 더럽다. 전보다 더 뻔뻔하게 나갈줄은 꿈에도 모를 이야기다. 먼 훗날, 그 사람. 하치자에몽은 아닌데, 지금은 사념에 발칵 뒤집힌 괴물로 밖에 더는 보일리야 그리 보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숨이 막혀온다. 가쁘게 쉬어가는 호흡 사이에서도 절로 침이 넘어간다. 또 어떤 말을 들어야 할지, 내 반박을 들어주기나 할지.

"나는 이제 네 실험체가 아니야."

그러니 놔줘, …발버둥 쳤다. 절대로 칠 수 없는 발버둥을, 정육면체에 부딪혀서라도 이 칠흑 덮인 어둠에서 빠져나오고 싶다. 만일 신께서 기적을 내려주어 이 벽을 제 손으로 깰 수 있다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면.

"…헤이스케?"

그래, '실험체' 의 운명을 벗어나와 지금 당장 너를 깨부숴줄게.

"돌아가자, 하치자에몽."

너와 내가 있었던 맨 처음으로.

"……응, 가자."

돌아가자, 너와 내가 있던 기억(추억)으로.
Posted by S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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