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당장 모습을 보이시죠.”
어딘가 부스러기처럼 굳어있는 말투가 공허한 허공을 두드린다. 허나 골목길을 넘어 밖을 거니는 시민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터, 듣는 사람은 남자를 제외한 그 이외밖에 없다. 남자의 말에도 반응조차 없는 바람소리만이 귀를 간질이자 남자는 주위를 살피다 고개를 바닥에 고정한 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나오라, 고. 반말 섞은 그의 냉정한 말에 모퉁이에서 어린 꼬마가 벽 뒤로 얼굴을 슬쩍 내밀어 남자를 응시하더니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갈빛의 머리를 보며 흙을 연성케 하는 남아는 남자 앞에 꿋꿋히 맞서 바라보는 걸 보아 의외로 용감한 꼬마, 라 남자는 숨긴 두건 사이로 옅게 웃음을 내며 고개를 들어 같이 꼬마를 마주했다. 남자의 모든 것을 두 눈으로 바라본 미숙한 꼬마를.
“저, 죄송해요.”
“다 보고 있었죠?”
“…네.”
“그럼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주세요.”
서리가 두 사람을 가로막는다. 오직 진심만을 품은 남자의 얼굴에서 사뭇 묻어나오는 냉기가 말한다. 당장 가라고, ‘꺼져’ 라고. 그의 말에 꼬마의 용감함은 땅으로 사라졌나, 파르르 떨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눈물을 뱉어보라 하면 실행할 것처럼, 꼬마는 꼬마다. 아까부터 꽉 쥐던 주먹을 조심스레 풀더니 눈가를 어루만졌다. 한 번 스윽 걸치더니 눈에서 옮겨지는 액체, 꼬마의 눈물이었다. 아무런 흐느낌 없이 눈물을 세우던 꼬마를 흘기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원래 인상을 더 구기며 큰 소리로 울법한 꼬마에게로 다가갔다. 청년과 꼬마, 몇 십 센치 차이나는 키가 그들의 신체를 알린다. 남자는 자신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눈을 비비던 꼬마 앞에 무릎을 숙여 서로 눈을 맞췄다. 두건을 씌운 상태서 남자 얼굴은 냉정한 눈 밖에 다른 건 모조리 두건에 덮여 칠흑으로 감췄다. 우는 아이의 어깨에 거세게 손을 탁, 내려놓고서는 그저 그렇게 꼬마를 마주했다. 바로 느껴져오는 고통에 꼬마의 눈물이 감쪽같이 멈췄다. ─마술같이도.
“남자는 그렇게 너처럼 찌질하게 울지 않아.”
냉랭하게 다시 한 번, 꼬마의 어깨를 치고서는 무릎을 세우고 꼬마에게서 등을 돌렸다. 단연하게 그의 말이 끝나자 꼬마는 놀란 채 뒤돌아 남자를 붙잡으려 옷깃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꼬마의 손은 옷깃을 잡기는커녕 어딘가 모를 두려움에 사고를 정지했다. 저 남자는 이상한 남자, 저 남자는 분명…. 꼬마의 생각이 제 머릿속을 헤집는다. 혼잡함이 몰려온 지금, 남자는 골목길을 빠져나오려 걸음을 옮겼다. 잠깐, 그 쪽으로 가면 형, 형은─!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형, 이란 호칭을 붙이며 꼬마는 남자를 향해 낮게 외쳤다. 꼬마의 말이 우습던지, 남자는 뒤돌아 당황하던 그를 의식했다.
“잘 봐둬.”
남자의 몸이 일그러진다. 어디론가 사라질 듯한, 그런 아찔함. 꼬마는 남자를 붙잡으려 마음을 굳건히 먹고 그에게로 다시 손을 길게 뻗었으나, 허나 이것은 이미 한 발 늦은, 꼬마에게서 무심하게 등을 돌린 채 흔적 없이 사라진 뒤였다.
“이게 바로 네가 말한 ‘이상한 사람’ 이라는 거야.”
꼬마에게 미미한 이명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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