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어떤 한 가지의 목적을 끌어안으며 나날을 버티어간다. 아주 작은, 생소한 목적이라도 그것을 생사에 끼워넣으면서까지 소망하는 그들을 바라보면 탄식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을 뿐더러, 무척이나 지루했다. 겨우 그런 것에 시간을 허비할 바에는 그이들의 숨통을 끊어버리리라. 이러한 잡념이 들 정도로 인간은 덧없이 약한 존재. 덧없이 가여운 존재라 느꼈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애초에 최강이라 불리던 스스로도 그런 인간, 어느 지구인을 동경해오며 무언가를 소원했다는 것. 그래, 등불을 비추면 비출수록 앞길이 보이듯 나의 삶도 '강함'이라는 강박관념이 신경을 파고들었다.

 강해지고 싶었다. 아니, 강해져야만 했다. 설령 나의 미래가 빛을 잃고 칠흑에 묻혀있다 하더라도. 그리 하더라도 나는 강해져야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쾌감을, 전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격한 쾌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헌데, 그것의 신념도 아주 잠시뿐이었을까.

 "역시 강해, 당신은 강했던 거야."

 강해지겠다는 염원, 나의 신념은 끝내 한 사람의 앞에서 그저 꼴좋은 허울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던 거다.

 "사무라이 형씨는 나보다 강했던 거야."

 간직하고 있었던 신념과 염원은, 나의 모든 것들은 욕심으로 변해갔다. 이윽고 나보다 더 강함을 이끌어내는 자들을 처단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손으로? 다름 아닌 나의 손으로.

 처참했다. 허나 그 상황 마저도 내게는 황홀한 시간이었다. 구원을 요청하는 그들의 비명소리, 뼈저리는 고통에 발버둥치며 울부짖는 소리가 즐거워 시도때도 없이 죄없는 주먹을 휘두른 적도 있었다. ……헌데 그의 행동 하나로 인해 순식간에 멈추고 말았다. 한순간에 나를 멈추게 만든 그가 즐거워, 그것이 즐거워서 그이를 조롱하면서까지 그가 가지고 있던 검으로 칼부림을 휘날리게까지 만들며… 아아, 그의 정체느 알고보니 '사무라이'라더라. 나아가 그들이 지니고 있는 검은 바로 자신들의 영혼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생각해보지도 못한 영혼, 나의 영혼. …나도 잘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 영혼은 그저 실질적인 이름의…, 그나마 형태가 있는 존재라고만 생각했기에.

 "결국 나의 힘은 당신의 영혼에 도달할 수 없었던 걸까."

 태양이라는 이름의 화사한 조명빛은 나의 몸을 관통했다. 심장은 물론이고, 나의 곳곳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후끈하다'는 감각이 아닌 '뜨겁다'라는 새로운 감각을 느끼고 만 것이다. 무엇이, 아니. 얕보기만 했던 그의 위력은 나를 압박하고도 남았다. 아아, 바닥에 엎어진 채 보였던 그의 망연한 얼굴은 언제쯤 지워지나. 초점이 흐릿해져가는 와중에도 이런 무의미한 생각을 다스리는 나를 보아하니, 이제 나도 무력하게, 덧없이 약해지는 것인가?

 그 때의, 사부처럼?

 "사람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멈추는 것."

 "…그건 또 무슨 소리래."

 "결국 야토라는 생명체도,"

 단순한 인간에 불과한 거였어. 라는 그의 날카로운 비수면서도 무심한 말이 순식간에 나를 일그러뜨렸다. 그와 동시에 눈과 눈 사이로 흐르는 선명한 물방울이 전자의 증거였더라.

 …한계, 그렇다. 사람이 경지에 올랐을 때, 비로소 멈추는 것. 끝내 읽을 수 없었던 그에게 다가가 어디모를 그 사람만의 '강함'을 사랑해버린 비극. 그의 강함을 사랑한 나머지 그에게 당하는 죽음마저 이토록 사랑스러운가. 눈물이라는 현상과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법한 그의 말이 섞이고, 섞여 내게 남아있는 무언가가 반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라지면 형씨는, …얻을 수 있어."

 "……그건 또 무슨 소리람."

 "이 우주를 순식간에 재패할 수 있는 힘, 이라거나."

 눈을 감은 즉후. 그간 내가 바라던 욕심, 그에게서 느껴온 나의 감정들이 사랑하는 눅군가에게… '강함'을 사랑했던 그에게로 나의 세밀한 것들이 흘러들어간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미세한 모든 것까지. 두통을 뛰어넘을 만큼 그의 머리는 '나의 존재'에 대해 가득 매워질 거다. 이것이 나만의,

 ……강함을 초월하는 공포스런, 부정할 수 없는 능력이었으리라.

 그는 아주 멀리, 내게서 멀리 떨어져있었다. 죽음을 애도하는 것인가, 아니면. 종잡을 수 없는 공포를 나와 함께 느끼는 것인가. 어느 쪽인지 미지수이나 이것만은, 적어도 이것만은 확실했다.

 스포트라이트를 용케도 받아내는 야토는 허무히 시들어, 죽는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나 싶었던 누군가에게 기억을 물려주고서는…… 아아, 생생히 전해져오는 오감에 그이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절망과 고뇌 사이, 아아. 부디 당신만은 편안했으면 좋겠는데. 그리, 그렇게.

 마지막을 알리는 빛은 나의 최후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그러니, 나머지는 당신에게. 그에게 맡긴다.

 "그럼, 나중에 보자."

 내가 향하는 지옥에서도 영원히 나의 길을 비추어주는 단 하나의 태양에게─.

*

 게임 오버, 상황은 종료되었다. 황폐한 토지에 있는 누구라곤 싸늘한 주검 하나, 가엾은 야토 하나가 자신의 약점을 버텨내지 못해 발생한 처참한 모습이었다. 전에 어떤, 누군가도 같은 이유로… 녀석의 스승이었던가. 그렇다면 더더욱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헌데 어째서, 마저 정리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그의 낯간지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맴도는가. 어째서, 나의 걸음이 그의 시체를 향해 움직이는가. 로봇도 아닌, 내가 누군가에게 이끌리듯 움직이고 있었다. 계속, 계속. 그리하여 발을 바삐 움직인 결과 이내 그의 앞에 망연히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은 예상한 그대로, 인간가뭄과도 같았다. 고상한 피부가 으스러졌다. 완전히 갈라져서는, 이것이 정말로 그의 모습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잔인한 몸이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도중, 어느 누군가의 음성이 다시 허공을 돌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도 높은 경지에 올라가야만,」

 「아니. 그 곳에는 사람, 지구인이 있어.」

 「그 사람을 뚫고 내가 가야만 해.」

 싫은 목소리는 계속, 지긋지긋하게 들려왔다.

 「사무라이 형씨, 사카타 긴토키는 강자.」

 「형씨의 힘이 부러워.

 「내가 모조리 가져가고 싶을 만큼이나.」

 「형씨의 강함은 사랑스러운 생명.」

 죽은 그의 목소리다. 마치 그가 나의 귀에 대고 말을 거는듯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여느 때와 다정하게 느껴지던 발언의 내용이라고는 흉기. 지금 들려오는 소리마저 당장이나마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이나, 괴기했다. 오한을 느낄 정도로, 같은 말이 되풀이해서 돌아오는 그러한 말들이…… 제발 이러지마. 제발, 제발.

 더구나 고요히 잠든 그의 입술에서는 단 한 마디 조차,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는 것도 좋으니, 간절히 애원했으나 이미 한 발 늦은 상태였다. 그는 죽었다. 나의 불확실한 양 손과 그의 선혈이 묻어나는 검으로 인해.

 「형씨의 힘을 갖고싶어.」

 「그런데 나는 가질 수 없어.」

 「그럼, 어떻게?」

 목소리는 하나, 허나 희곡을 펼치는 듯한 대화. 1인 2역으로 서로를 주고받는 주인공은 단 한 사람. 당최도 알아먹을 수 없는 이야기의 흐름이 나를 괴롭힌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통스럽던가. 이윽고 그이의 대화와 동시에 펼쳐지는, ……허상.

 죄없는 인간들을 죽고, 죽이는 그의 형상이 나의 스케치북에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짓? 대체 무엇? 도대체 그가 나의 힘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

 「억지로라도 내 소유물로 만드는 수 밖에─.」

 그렇게 끝없이 들려오던 대화는 죽은 그의 시체 앞에 땅에 머리를 박고 허덕일 정도로 지독하게, 일시정지조차 없는 라디오처럼 그리 들려오고 있었다. 아주 자잘하면서도 미세하게,

 "…내가 잘못했어."

 지금이라도 당장 눈물이 솟구칠 정도로, 그렇게 흐르고 있었더라.

Posted by S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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