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울림은 그에게 전해지고 있을까.

 하루 내내 떠올린 사람이라고는 당연하다시피 그, 그이, 그 사람이었다. 그가 무척이나 보고싶었기에 아무런 죄없는 부하에게 나의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 꽤 오래지. 오늘 뒷정리는 제대로 잘 처리하지 못했다는 모순적인 문장까지 뒤섞으며 내 이야기를 새어듣는 부하라는 녀석은 고개만 살랑이며 징그럽게 쌓인 서류를 들춰볼 뿐이었다. 어찌나 바쁘던지, 불평많은 상사의 험담에도 아무렇지 않게 외면하는 자세를 보아하니… 상당히 지친건가. 아아, 너무 지나쳤나. 아니, 요즘들어 내게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일부러 모르는 척, 해주는 걸지도. …그런 점에서 나의 부하를 바라보면 참으로 기특하다고 여겨진다.

 나에게 있어 변화라고 하면 꽤나 단순한 이야기다. '그'와의 만남을 가지지 못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불안증세. 최근 들어 자진으로 이끌어내던 힘도 점차 빠지는가., 싶어 실제로 확인해보니 예상은 빗나가지도 못해 완벽히 적중했다. ……그래, 가엾게도 나는 그이가 보고싶은 나머지 이토록 사랑하던 나의 힘을 스스로 놓아버리고 만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사실을 파악한 부하마저도 당황한 기색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뱉은 말이라곤,

 "단장, 사랑에 빠졌나보구만."

 툭하면 한 사람이 보고싶고, 아무렇지도 않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그 사람의 장점을 늘어놓는다거나 호기심에 그 사람의 특징을 파악해보는 그런 행위. 부하가 말하기를, 나는 이미 '짝사랑'을 뛰어넘은 잔혹한 '사랑'이라 칭하였다. 나는 그에게 사냥감을 초월하는 감정을 갖고 있을 뿐더러 더구나 그이를 사랑하고 있다더라. …아아, 본래 같았으면 당당히 거부하였을 내가 순조롭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서류에 시선을 내리꽂는 부하에게 고한다.

 "응, 맞아."

 나도 모르게 멋대로 나타나 멋대로 사라져버린 '그'를 사랑하고 있노라고. 감히 가져서는 안될 감정을 손에 넣어버리고,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망상은 힘의 권력 따위가 아닌 그 사람의 신체, 아니. 모든 것이 폭풍처럼 나를 집어삼켰다. 얼떨결의 그의 존재는 내 안에서 너무나도 버거워져, 무거워져서는 이내 속을 새카맣게 애태운다. 빨리, 한 시라도 빨리 그를 만나지 못한다면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아. 이리도 등을 매우는 서늘함은 언제부턴가 본능을 거부하고 있었다. 허나 나의 입으로 내린 선택은 지금의 몸이 부정할지라도 그저 나의 본능에 따라 맡기리다.

 ─아부토, 지구로 가자. …그래, 이것은 나의 본능이요, 그를 독점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조용히 서류를 눈으로 훑나, 싶던 부하가 장난스러우면서도 완전한 진심뿐인 말에 반동하던지, 곧바로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허나 평소와는 다른 부하의 눈이 두 눈동자에서 훤히 비춰지고 있었다. 자칫하면 하극상이라도 내보겠다는 듯한 날카로운 눈매, 살기를 띄운 눈매를 가진 부하를 응시하며 고개를 기울이자 순간 탁, 둔탁한 음과 함께 나의 두 팔이 붙잡힌 채 빠른 속도로 등과 팔이 중간 복도의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것은 부하가 내게 반항을 보이는 증거였다.

 아무리 압력으로 떼어내려 해도 신은 유감스럽게도 힘과 사랑이라는 저울에 사랑을 선택하였나보다. 억지로 발버둥치려 발을 써보아도 이미 부하에게 눌려버리고 만 몇 분 후의 일,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는 나더러 약하다고 독설까지 뱉은 녀석이…."

 "이거 혹시, 정말로 하극상?"

 "아니, 하극상이라 해도 조금 뒤틀린 이야기지."

 뜻밖의 일, 아니. 애초에 절대, 너만은 절대 이러지 않으리라 신뢰했건만.

 무슨 행위를 벌이나 조마조마 했다. 허나 나의 입술을 겹치는 것은 그의 입술. 그 순간 나의 내부를 물컹한 무언가가 헤집고다니기 시작한다. 조심스레 나의 혀를 맴돌고, 돌아 존재하는 치열의 구석구석을 훑는다. 마저 안쪽까지 깊숙히 들이미는 야속한 행위에 차마 '흣', 하고 짧은 신음까지 흘러내리는 건… 왜, 어째서? 이러한 의문문을 불러들일 정도로 상당히 수치스러운 짓이었다. 더구나 공개적인 장소… 라 해도 다행히 복도를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 망정이다.

 빠르게 움직이던 부하의 놀림은 끝내 낮은 템포와 함께 자신의 투명한 액을 나의 입에 건네받은 것과 동시에 진한 키스신의 막을 내렸다. 벅차오른다고 해야할까, 입꼬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타액이 끓는 물이 넘쳐흐르듯 급박하게 새어나왔다. 그것도 나의 입술에서, 부하라는 녀석과 내가 섞인 침물이….

 그렇게 정적을 이루었다. 이윽고 조심스레 그가 말없이 가둬놓은 팔을 풀어주었다. 허나 그러한 그의 모습을 직시하며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즐거운 짝사랑이었다."

 내게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부하의 젖은 눈동자를 이제서야 볼 수 있는데, 또다른 내면의 부하를 놓아버린 것만 같아 애매함에 애매함을 덧붙인 기분이었다. 끝내 붙잡을 수 없는 나를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당연하게도 나의 부하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 사실에 정녕 고개를 떨구며 무겁게 발걸음을 돌려본다.

 "…미안해, 아부토."

 "거 참, 미안할 것 까지야."

 나의 마음, 속은 언제나 일방통행.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안타깝게도 깊은 입맞춤을 나눈 너가 아닌 당장이라도 보고픈 그이었기에 살포시 부하의 짝사랑에 진한 키스를 끝으로 가여운 종지부를 찍어본다.

Posted by S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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