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시간이 없었다. 어김없이 흐르는 시간을 죽이든 밥이라든 좋으니 어찌 해서라도 멈추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허나 이 잔혹한 상황을 실감해야만 한다. 자명종 시계의 알람을 꺼버린다 해도 바늘은 움직인다. 째깍, 째깍. 하고… 반복되는 짧은 음에 눈을 떠보면 시계바늘은 여전히 제자리를 벗어나 나름 제 일을 하기에 바쁜, 아니. 지금에서야 마주하니 시간이 멈춰버린 듯 했다. 허나 다시 환상과 현실을 착오하니, 아아. 초침은 300번을 향해 달려간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마치 이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듯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림을 진행한다. 그래, 300번이라는 300초, 분으로 환산해보자면 5분. 그 5분이라는 시간이 지난다면 이 끔찍한 세상과 안녕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 멀쩡하던 지구가 5분이라는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한 순간에 터진다고 하더라. …참으로 해피한 이야기였다. 이제 지루했던 생활의 종지부를 찍는다고 하니 기뻐할 수 있었건만.
…허나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5분 안에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얼른 그 검으로 내 심장을 찔러라, 해."
히지가타를 다음으로 해서 영원히 얼굴도 보기 싫던 그녀가 말한다. ─이 일은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주도한 일이니, 멈추는 것도 제 자신이 죽어야만 멈출 수 있다고.
……확실히 광범위한, 아니. 한계를 초월한 일 따위를 주동한 녀석이 지금 나의 앞에 있는 괴력의 여자라는 자체가 미친 짓이다. 그렇기에 거리낌없이 허리춤에 꽂힌 칼집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듯이. …아아. 그녀는 원수가 아닌 그저, 그러한. …여자, 아이인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죽을 각오는?"
"나 하나 사라지면 그만이다, 해."
그녀의 진심이 나의 몸을 건드린다. 남들과 달리 의지가 가득한 그녀의 눈빛부터가 지금의 나를 격렬히 자극하는 걸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추측해 본 시간은 2분, 180번의 시침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움직이면 게임 오버다. 그 남아있는 촉박한 시간에도 그녀는 외친다. 울부짖는다. 얼른, 얼른 자신을 죽여달라고. 이러다가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잿더미로 변할 거라고.
…왜일까, 어째서일까. 그녀가 언급한 '소중한 사람' 중에 오키타 소고라는 존재가 있냐, 없냐라는 상념이 문득 제자리를 헛도는 것인가. 수평을 향해 검을 쥐어든 왼손이, 텅 빈 오른손이 가늘게 수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애초에 내가 그녀를 찔러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당하고 싶더라면 나 말고 자신이 소중히 하는 '그 사람'에게 부탁하면 될 것을, 갑자기 있을 리가 없는 소식을 들고 와서는 내게 혼란을 안겨주는 이유는 무엇? 설마 이 모든 것이 그녀가 벌인 상황극이라거나, 시덥잖은 시나리오라면?
"안 죽일 거냐, 해?"
"……아아, 이왕 이렇게 되버린 거."
지속된 수전은 이내 검을 땅에 떨구고 만다. 결국 머릿속을 헤집던 그것들을 내다던진 채 나의 두 팔로 그녀의 가녀린 등을 안아본다. 내게 있어 그녀는 단순한 여자아이. …원수 같은 여자아이, 그런 여자아이기에 나의 하나뿐인 여자라고 불릴 수 있는 아이. 그러니 나의 하나뿐인 여자를 내 손으로 내리칠 수 없는 노릇이다. 그저 이렇게 가녀린 여자를 끌어안고, 어느새 몸으로 전해지는 그녀의 떨림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토록이나 사랑했던 여자이기에 할 수 있는 일. 그리고서는,
"응. 잘 있어라, 해. 사디."
푹, 하고 꽂혀오는 나의 검붉은 액체들을 그녀의 냉기서린 품으로 지워낸다. 그래, 제대로 벌어진 그녀의 살인극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마지막 시침이 째깍, 하고 지나갔을 때야 종막을 알린다.
──아아, 결국 다 짜여진 각본이었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