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생각치도 못한 미래 앞에 무릎을 꿇고 좌절한다. 내가 바라던, 그토록 염원하던 미래는 이럴 수 없다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며 자학을 시도해가며 다가온 현실을 필사적으로 부정한다. 그래, 그 중에 가장 괴로운 게 있더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것. 아무런 예고 없이 허무히 정적을 감췄다는, 안타까운 사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머리를 쥐어싸고 고민해왔다. 아니, 한참동안 울었을 지도 모른다. 쉴 새 없이 사라진 그의 이름을 외치며, 혹은 그가 사라져서 잘됐다는 허울 좋은 말을 꺼내면서까지 자기 자신을 자독였다.

 허나 그것은 잠시도 지나치지 못한 채, '미안해'라는 한 마디와 함께 구슬픈 결론을 내리지었다.

 세상에서 둘도 없이 바라보았던 사람, 동경해오던 그 사람을 찾아 다니기에는 가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 앞에 주저앉았다. 다르게 말하자면, 아무리 찾으려 해도 정체마저 숨긴 그를 찾을리야 찾을 수 없었던 거다. 그렇게 그가 없는 하루를 보내고, 보내고, 끈질기게 보내가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분명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나는 믿으니까. 그 사람을 믿으니까. 돌아올 거야… 라며 신뢰라는 자물쇠를 손에 붙들었다. ……그리, 그리 믿었거늘. 기다렸 거늘, 현실은 너무나도 잔혹하게 돌아왔다.

 「사카타 긴토키는 죽었다.」

 냉정하게 답을 내린 '거짓' 앞에 경련을 일으켰다. 양 손이 정신을 잃고 수전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중점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동공을 스스로 제지할 수 없었다. 단순히 행방불명으로 끝난 줄로만 알고 있던 사실이 갑작스레 죽었다. 라 단호하게 내려졌으니까. 인정할 수 없는 결과에 사람들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변화가 일어났다. 모두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그를 자신들의 은인으로 생각하던 이들이 세상이 찢어질라 외치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애석한 쿠데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던 싸움은 현재 상태까지 불러들였다.

 휑하니 고요한 카부키쵸, 피어오르는 냄새라곤 썩은 잿더미와 니코틴의 향이 엉겨붙어 불쾌함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곧게 피어올라 드넓은 천지마저 영향을 안겨주더라. 가만히 지켜보던 신께서 눈물을 흘리신다. 그 눈물은 구름을 내리타고, 마하의 속도로 바닥을 적신다. 한, 두 방울씩 내려오는 신의 눈물은 우리들에게 있어 '비'라고 부른다. 허나 신은 어찌나 눈물이 많으시던지, 눈이 따가우시던지, 하루이틀 연속으로 빈틈없이 이슬비를 내려주셨다. 그 덕분에 바닥이 질척임과 동시에 불쾌지수가 하늘을 솟구칠 정도로, 아무런 이유 없이 분통이 올라오는 한낮의 일이었다.

 "어이."

 늘 한적한 카부키쵸 사이에 숨겨진 골목길을 건너자, 공교롭게도 항상 자리를 유지하던 야쿠자들이 한 명도 없었다. 아마 비로 인해 다들 제 고향으로 돌아갔나, 싶어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평범한 경찰… 아아. 지금은, ……딱 마주친 그의 눈을 순식간에 돌려버렸다. 이젠느 엮이기도 싫은 녀석과 만났으니, 인상을 구기며 그를 등지고 돌아 돌아가려던 찰나 우산을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것은 나의 힘이 아닌 그의 힘이었다.

 "놔."

 "……."

 "놓으라고 했잖…!"

 상황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끝까지 나의 손목을 붙잡던 그의 인력으로 인해 방향을 틀었다. 정면으로, 그의 앞에, 이내 손에 힘이 풀리더니 들고 있던 우산을 제 스스로 놓아버렸다. 우산이 바닥에 떨어져 탁, 하고 작은 효과음을 내던 동시에 어느새 나는 차디찬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있던, 옷마저 축축히 젖은 그의 품에 안겨있다는 걸 자각하고 말았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상황파악을 위해 겨우 굴려서라도 주변을 살폈다. 좁은 벽을 사이로 둔 채 나를 끌어안는 그의 행동에 놀라 양 손을 그의 어깨에 두고 힘을 주어서라도 떼어내려 안간힘을 써보았다. 허나 그의 손이 나의 등을 조심스레 다독이는 그 순간에, 나의 행위는 마법같이 멈춰버렸다. 그렇게 아주 잠깐의 정적을 이루던가 싶은 때일까,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힘들, 었겠지."

 "하?"

 "그러니까 맘놓고 울어라."

 얼척없는 그의 말에 가만히 그를 올려보아도 그는 그저, 내가 아닌 넓은 카부키쵸가 훤히 비치는 정면만을 직시하며 나의 등을 토닥일 뿐이었다. 마치 어린 애를 다루는 가족처럼, 먼 훗날의 마미처럼. 조용히 나를 끌어안으며 다독인다. 울지도 않는 나를 동정하고 있었다. 이유는 뻔했다. 죽지도 않은 사람이 죽었다고 표현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그이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그러니 난 그 녀석의 위로를 격하게 사양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래야만 하는데.

 몸은 전처럼 나의 본능을 거부해가며 그의 품에 착 달라붙어 있다.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말을 들은 체도 않고 안겨있는다. 그런 거만한 그의 품에서, 조금씩 풍겨오는 그 녀석만의 특유한 온기가 겹쳐오르자 순식간에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전혀 힘들지 않다. 그럴 리가 없다. 허나 나는, 나는 울고 있었다. 땅이 달아날 지라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 올린 손을 파르르 떨며 애원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살아있어, 죽지 않았어. 죽었다고 표현한 것들이 괴로워서 숨을 못 쉴 것 같다고…. 그러자 속으로만 뱉던 나의 폭로는 그의 한 마디와 함께,

 "형씨는 죽지 않았으니까."

 시끄럽게 흘러내리는 가랑비와 함께 애석함을 잊고 모조리 떨궈버렸다. 단지 그의 품에 안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더운 눈물을 지독하게 흘리던, 어느 한낮의 일이었으리라.

Posted by S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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