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건너와버린 걸까.
"이거 풀어, 당장."
그 이유를 묻는다면 분명 생색을 낼 거다. 아니라면 꼴좋은 웃음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완전히 묶어버리겠지. 몸도, 마음도, 심장마저 천천히 그의 소유로 넘어가겠지. 그것이 미더워 다시금 발버둥친다. 아무런 죄따위 없는 나의 손발을 족쇄로 꽁꽁 채우고서는, 그러한 나의 추태를 바라보며 사납게 웃어보이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어버리고 싶었다.
이는 마치 정해진 역할이 자연스레 뒤바뀌듯이 그는 경찰, 나는 악당. 허나 뒤늦게 정신차려보니 있을 리 없는 상황이 눈앞에 시뮬레이션처럼 실현되고 있었다.
나는 묶여있다. 묶인 채로 어두컴컴한 방에 억지로 들어와있다. 심지어 나의 복장마저 진선조 제복이 아닌 순 범죄자가 입고 다니는… 죄수복. 푸른 계열과 흰 계열이 줄지어, 상의에서 하의로부터 완벽하게 이어져있다. ……되려 심기가 불편했다. 인상을 구긴 채로 수갑을 풀려 좌우로 손을 당겨보니 밀려오는 사슬의 압박과 고통으로 인해, 풀지도 못해 발악한다. 말 그대로 울부짖었다. 나는 경찰이라고, 경찰인 내가 왜 이런 더러운 곳에 갇혀 있어야만 하냐고… 화가 치밀어올랐다. 화산이 폭발하듯 나마저 스트레스로 죽어버릴 것만 같다.
"헤에, 내가 무슨 이유로?"
굳게 닫혀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간간한 조명조차 없었기에 또박또박 걸어오는 형상을 제대로 가려진 탓에 완전히 볼 수 없었으나, 분명한 것이 있다면… 나는 그가 누군지를 확연히 알고 있다는 거다. 뻔뻔한 자태로 나의 앞에 우두커니 서서는, 무릎을 굽혀 나의 모습을 훑으며 웃는 녀석. 있으면 안될 존재가 있을 리 없는 옷을 입고 할 수도 없는 경찰 노릇을 행하고 있다. 확실히 미친 일이었다.
어째서 한 때, 아니. 악당이라 불리어야 하는 그가 반대로 경찰이 되어 나타났는지. 아무리 쓸데없는 머리를 굴려봐도 전혀 모르겠단 말이다.
"악당이란 새끼가, 왜…."
"응? 악당이라니, 무슨 소리야?"
악당은 너잖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너…… 나. 살아있던 얼척이 어느 순간 증발해 사라졌다. 그의 무난한 대답에 허탈하게 웃었다. 억지로 웃음을 끌어내며 어깨를 들썩였다. 믿기지도 않는 상황에, 안방에서 펼치는 역할극장의 주연으로 직접 실감하면서까지 분이 차오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수갑으로 봉쇄된 손을, 묵묵히 뒷짐을 지던 손을 어떻게 해서라도 앞으로 넘기고 싶었으나, 좀처럼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다. 아니, 두 쪽 수갑의 사슬을 가로질러 묶어놓은 줄이 있었다. 그 줄을 따라 눈을 흘기니 성인 남자의 무게보다 열 배 정도 나가는 묵직한 쇳덩어리가 덩그러니 방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니한가.
미쳤다. 확실히 미친 짓이었다. 벗어날 수 없다는 영원한 생각에 발을 허우적거렸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반대쪽 쇳덩어리가 나의 발을 가로막고, 조용히 비웃는 듯한 돌덩어리의 허상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하필이면 왜, 왜. 경찰이란 이름을 들먹이며 나를 조롱하는 녀석과 시간을 벌여야 하는 건지. 한탄에 헌신을 거듭해나갔다. 허나 그 앞을 가로막는 인간이 있더라면,
"후후, 미안. 많이 놀랐을 거라고 생각해."
"그럼 당장──!"
"아아, 그런데 이를 어쩌지?"
허리춤에 있던 그의 손이 천천히 내게로 향한다. 애써 고개를 가로저어서라도 그의 손이 나의 얼굴에 달라붙는 것만은 끔찍히도 질색이었기에…. 아아, 역시.그의 무력행사는 여전했다. 그는 나의 턱을 한 손으로 바로잡았다. 벗어나지 못하게, 어느 순간 볼이 얼얼해질 정도로나 꽉 붙잡고서는 놓아줄 기회를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기분나쁜 감촉에 인상을 찌푸렸다. 만약 손을 움직일 수 있더라면, 그의 뼈를 아작낼 수 있을테고. 발을 움직일 수 있다면…. 한 방에 끝낼 수 있었을텐데.
나의 인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이페이스를 유지했다. 아무리 네가 그런 얼굴을 하든, 말든 자기는 상관 없다는 여유로움이 내게도 타고내려, 반동한 나머지 끓던 열이 제대로 끓는점을 찾아 헤매이기 시작했다.
그러한 나를 제치고 그는 입을 열었다. 허나 그의 한 마디에 모든 사고가, 심장이 멈추는 감각을 새기고 말았다.
"이제 진선조는 너를 기억하지 않아."
"……하?"
"네가 아닌 나를 기억하고 있어."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리라 생각해야만 한다. 그의 손이 나의 턱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끝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개를 절레다가, 그새 시야가 흐릿해진다. 눈앞에서 느른히 웃던 그가 사라져 간다. 뿌연 시야에서 서서히 모습을 비춰내며 다가오는, 아니. 나에게서 멀어지는 이들이, 인간들이, 진선조의 이들이 선명하게 비처졌다. 주저앉은 내게 눈길조차 내어주지 않은 채 가만히 걸어간다. 앞을 향해, 그저 앞을 향해.
달려가 그들을 붙잡으려 해도 손발에 묶여진 족쇄에 몸을 허공에 휘젓는다. 어서 풀어달라고, 잡아야 한다고…. 괴성을 지르며, 수전을 일으켜가며, …사그리, 나의 몸이 시들어간다는 것을 느껴가며 울부짖었다. 허나 모든 환상이 유리처럼 깨지고 나서야 다시 한 번……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마치 길잃은 어린아이처럼, 애써 죽음을 부정하는 불치병 환자처럼.
"──걱정마."
흐느낌을 참고 끅끅거리는 나를 살포시 안아주는 이가 있었다. 잊혀질 바에는 차라리 죽는게 옳은 선택이라 방황의 끝을 알리는 칼날을 쥐어버리고서는, 바들바들 떨며 주저앉아 통곡하는 나의 모습을 그는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울보라는 사실을 그는 미처 깨닫지 못해… 옳치, 착하다. 라며 가만히 나를 달래어주는 그를 한심하다고 여겨야 한다. 역할을 앗아간 녀석이라며 비하해야만 했다. 허나 그의 한탄과 비난이 사라진 지금, 웃음을 눌러 참아가는 그의 동정을 받으면서까지 눈물을 쏟아내는 내 자신이 멍청하다고 느낄 터이다.
"너는 영원히 나의 것이야."
"…지랄, 하지, ㅁ……."
눈물을 머금고 곧장 그의 품에서 몸을 떼어냈다. 그는 아무런 일도 없이 태연하게 웃나, 싶더니 다시 손을 올렸다. 이번에는 턱이 아닌 나의 어수선한 머릿결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허나 당장 놓으라고 감히 말할 수 없었던 것은, …불쾌한 그에게서 익숙한 누군가의 냄새를 맡는 기분인 걸까. 결국 부정을 꾹꾹 참아내고 얌전히 그를 받아들였다. 잠시 나의 머리에 손을 얹었던 그가 여전히, 손을 그대로 나의 머리에 올려놓은 채 지긋이 눈을 마주하더니 또다시 생글생글, 웃어보였다.
"우주의 악당."
"그거, 너잖아."
"하루사메 제 7사단 단장, 오키타 소고."
네가 나의 옆에 있는 한, 내려진 운명이 너와 나를 비춰주는 한, 나는 널 영원히 지켜줄게. 아무도 가로채지 못하게, 너를 감싸줄게.
──────그저, 한 사람만을 위해 태어난 경찰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