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탄 쪽빛 팔레트가 천지를 물들인다. 아아, 기분이 좋은가보다. 정 반대로 돌아가는 아이러니한 사태를 두고서는 어찌도 푸르디 푸를 수 있다는 것인가. …신은 참 매정한 존재라 여겨도 과언은 아니었다. 물론, 아주 잠시동안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따가운 염천 아래, 망연히 서 있는 두 사람의 존재가 나의 눈에 비춰졌다. 언 한 쪽은 금세라도 말라 비틀어질 듯한 매서운 상황에 저 멀리, 가만히 서서 두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켜보는 내가 서 있었다. 절대 성립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싸움을 그저 저만치서 관전할 수 밖에 없었던… 허나 그렇다고 해서 최후의 순간, 종지부를 알리는 마지막이란 푯말에 나의 이름은 결코 새기고 싶지 않았다.
…즉, 결국 운명의 신이 선택한 대로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상하지?"
정적을 꿰뚫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의 하나뿐인… 아니, 애초에 '가족'이란 절실한 붉은 연도 제멋대로 끊어버린 위선자. 먼 훗날, 나의 단 하나뿐인 오라버니.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은 사람. 어느 한 순간에 변해버린 사악한 괴물. 나는 이 사람을 막아야만 했다. 나의 힘으로나마 그이를 막아서야 했다. 위태로운 악의의 끝을 파고들어서라도, 그이가 다시 옛날의 '그 사람'으로 돌아가고픈 목적 하나만으로 기어코 여기까지 걸어왔다. 그것도 내게 손을 내밀어준 무덤덤한 사람과 함께.
나의 이질적인 오라버니라는 사람. …카무이. 그를 막기 위해 일부로 검을 휘두르면서 까지 애써 보태주는 어느 누군가.
그래, 사카타 긴토키. 카무이가 보란듯이 찍어놓은 한 사무라이. 요시와라에서 일어난 사건 이후로, 카무이는 정적을 감췄더라고 생각했건만. 헌데 어느 틈에 이리도 예고없이 나타나서는, 멋대로 그 사람에게 도전장을 내밀고서는… 뒤늦게 알아차리고 서둘러 달려갔을 때,
"당신의 승리야, 형씨."
비틀거리는 몸을 제어하지 못한 채 쓰러지는 이가 있었다. 머릿속을 매꾸는 둔탁한 소리, 카무이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검을 쥐던 그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허나 공교롭게도 그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지 않았다. 되려 검을 일부로 바닥에 떨군 채로, 고개를 내 쪽을 향해 돌리고서는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본다. 군데군데 벌어진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핏줄기는 나를 어지러이 만든다. …그러던 그가 아슬아슬하게 손을 떨며 잡던 검을 내게로 던져든다. 힘겹게, 힘겹게 붕, 떠오르던 검은 어느샌가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고스란히 떨궈진 검은 당연하게도 검붉은 선혈이 줄지어 흐르고 있었다. 다름 아닌, 당연하게 여겨지는, 카무이의 애처로운 선혈이.
그가 한 행동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또다른 의미가 담겨있는지는 나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더구나 속을 읽을 수 없었던 인간이었기에, 더더욱. 그를 파악하기도 전에 나의 속셈이 읽혀지고 마는 그런 사람이기에.
…시선을 그대로 바닥에 고정한 채로 그에게 물었다. 이대로 돌아갈 거냐, 이제 다 끝난 거나며. 애석하고도 암울한 질문에 그는 내게서 시선을 뗀, 쓰러져 있던 카무이를 바라보며 과묵한 입을 애써 열어주었다. …허나 돌아오는 대답마저 그이다운 대답이었다.
"그걸 써서 제대로 마무리하고 와라."
평소와도 같은 그의 말투, 숨을 헐떡이면서까지 말을 이어나간 후에야 자신의 사명을 다하였다는 듯이 유유히 자연스러운 척, 그리 세워가며 뒤돌아 앞을 향해 나아간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평하고도 고통스럽게.
허전한 그의 뒷모습을 등지고 굳은 결심 끝에 망연하게 놓여진 검을 들고서는 서서히 그에게로 발을 돌렸다. 분명 단순한 목검일 터, 두려운 칼날조차 달음박질한 느슨한 검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나……. 그래, 그는 잔인했다. 내게 검을 남기고 사라진 그의 모습이 아닌, 홀연히 자리에 누워 세상물정 모르게 곤히 잠들어있는 너의 존재 자체……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이 나의 눈에 비춰졌다는 그 자체가 갈수록 잔인하게 여겨졌다.
그의 앞에 걸음을 멈춰섰다. 눈을 뜨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검을 붙들고 단숨에 죽일 수 있었다. 어느 방심조차 없이 그를 편안히 보낼 수 있단 말이다. 허나 검을 붙들어 맨 소닝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는 세상의 규율을 사뿐히 즈려밟은 나는 죽어가는 그의 앞에 주저앉았다. 이윽고 그 상태, 가늘게 몸을 떨며 차갑게 식어가는 그의 손을 붙잡고 나의 볼에 녀석의 손을 얹어올렸다.
"난 이런 걸 바라지 않았어."
"……."
"일어나라, 해. 카무이."
일어나라, 해. 여기서 쉽게 죽을 네 녀석이 아니야. 왜 망가진 거야. 왜, 왜, 또 나를 두고 가는 거야? 슬슬 밥 먹을 시간이야. 마미가 저 쪽에서 기다리고 있어. 간만에 파파도 왔어. 그래, 또, 그 때처럼…. 옛날 모습 그대로, 지금의 일은 모두 잊고 넷이서 함께 나란히 앉아…. 누워 있는 마미 앞에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어. 그러니까,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줘. 서서, 나하고 싸워. 일어나, 일어나, 카무이……. 제발 일어나줘.
애초에 난, 애초에 나는…….
"난 이런 걸 바라지 않았단 말이야──!!!!"
나의 눈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건 맑은 하늘의 비인가, 눈물인가. 고동이 느껴졌다. 북치듯 심장이 빠르게 내리친다. 그래, 이번 건 그 사람이 나빴던 거야. 이렇게 무심히 뒷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사카타 긴토키라는 사람이 나빴던 거야. 결국 손으로 꾹꾹 억눌러내던 감정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평소에 쉽사리 느꼈던 감정들이 아닌, 그저 끝까지 「나의 하나뿐인 오빠」로 되돌릴 수 없었던 분노, 설움, 고통…. 못미더운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서는, 조금씩 나를 자극한다. 이렇게 모인 그것들은 '눈물'이 되어 나의 눈에서 시냇물처럼 타고 내린다.
그렇게 한참을 울며 그의 손을 꽉 붙잡고 있던 어느 한 순간에, 나는 보았다.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오빠로써,"
미안해, 카구……라.
다정히 눈을 감은 채 잡아준 손에 옅은 힘을 실었던, 지긋이 웃어주던 그의 모습이 허상이 되어 나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