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우연(yeonkata)님이 쓰신 카무긴(나는 결코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의 뒷편(혹은 외전)입니다!
링크! ▶ (나는 결코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다들 사랑스런 연님의 글을 봐주세요..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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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키기에는 늦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읏!"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무고한 다리를 떨며,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골목길로 끌려나갔다. 늘 익숙하다시피, 그렇게. …과연,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기에 애써 부정하며 발을 빼돌렸다. 허나 명을 받들지 않던 몸은 물론이요, 운명의 굴레는 돌고 돌아 마지막은 내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먼 옛적부터 자각했을 지도 모른다. 누구로 인해? '그'로 인해.
억지로 끌려오고, 또다시 노골적인 행위를 그려내기 위해 차디찬 바닥에 몸을 굴렀을 때, 그의 위력은 변함없이 나를 짓밟았다. 일어날 틈마저 내어주지 않았다. 뭐가 그리 급하던지, 어느 틈에 나의 우위를 장악하던 그가 상체를 숙여 거만한 두 손으로 나의 볼을 쥐어감싸더라. 순식간에 겹친 입술과 입술은 성난 짐승처럼 서로의 안식처를 찾아 미친듯이 헤엄치고, 다리와 다리 사이로 몰려오는 그의 자극에 반사적으로 벌어지는 입술…. 노림수를 써먹었다.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는 그의 모습은 반항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또, 다시. 나락으로 향하는 톱니바퀴는 너의 쌉싸름한 키스와 함께 마하의 속도로 굴러들기 시작한 거다.
만일 '사랑'따위를 했더라면, 그이와 함께하는 모든 것들을 넓은 아량으로 수용할 수 있었을 터지. 허나 대담하게 나를 '장난감'이라 칭하였던 그에게 맺는 키스는 어느 모를 혐오를 불러들였다. 그래, 잠자코 평범한 엔딩을 바라며 그의 물컹이는 고체를 공격적으로 맞대응하는 나의 혀는 이를 바치는 증거이기도 했다.
"나한테서 벗어난 기분은 어때?"
마지막으로 그는 타액과 타액을 엮어내어 만들어 내었던 너와 나의 애액을 모조리 내 입안에 떠넘기고 나서야 가볍게 입술을 떼어낼 수 있었다. 허나 나의 침물이 아닌, '그'와 내가 섞여졌다는 더러운 그것이었기에 애써 삼키지 못해 입꼬리 사이로 시냇물처럼 엇갈린 리듬에 맞춰 불안정하게 흘러내렸다. 한참의 나였더라면 그의 명령을 받들이는 대로 억지로 목구멍에 집어 넣었거늘, 오늘은 어째서인지 집어 삼키라는 명도 없이 멋대로 움직이는 나를 가만히 위에서 턱을 괴어 훑어보기만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더라. …아아, 입술만 떼어낸다고 해서 과연 자유를 누릴 수 있던가, 그는 끝내지 않았다. 아니, 이런 걸로 마무리를 매듭짓는 그가 아니라는 소리다.
"완전히 해방됐다고 생각했던 거야?"
"놔, …이거 당장 놔달라고."'
"아니, 아니야."
"……."
"당신 몸이 직접, 이렇게… 말하고 있잖아?"
쥐도 새도 모르게 한 번의 길고 짧은 입맞춤과, 복부로부터 조심스레 다리 사이를 매만지는 그의 손길로 인해 무언가가 제멋대로 솟아오른다는 것을 반강제적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 이 때 만큼은 여자가 되던간에 그에게서 간절하게 벗어나고픈 여러 개의 창이 나를 곳곳을 뚫고 지나갔다. 싫은 이야기를 전부, 나의 몸이 긍정으로 받들인다는 사실에 믿기가 어려워 손을 떤다던가, 입술을 깨물어 새어나오는 신음을 억누르는 불안 증세를 도리어 반복했다.
바람이 불어왔다. 생각보다 거센 바람에도 아니하고 조금씩 달아오르는 체온에 다급히 하루 빨리 그의 가느다란 어깨에 손을 얹어 그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사라져, 제발 내 눈앞에서 꺼져줘. 입 밖으로 뱉지 못해 입술 사이로 흐르는 비릿한 혈내음을 실감할 수밖에, 그 무엇도 없었다. 특히 밀어내면 밀어낼 수록 진드기처럼 자신의 둔부를 나의 복부에 밀착시키고서는 슬금슬금, 웃음을 그려내는 그의 앞에서는 더더욱. 나의 외침을 듣는 척이라도 할 리가 없었다.
……잔인한 새끼.
"입, …닥, 쳐."
"헤에, 꽤 안 봤다고 엄청 기어오르잖아?"
"……으읍, 읍."
"사실 하고싶은 말이 있어서 와본 것 뿐이야."
몇 번 만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서 버렸네? 작은 읊조림과 함께 두 다리 사이로 튀어나온 더부룩한 무언가를 손으로 꽉, 이에 반사적으로 거세게 그를 밀어냈다. 밀려오는 고통은 어찌나 매섭게 달려오던지, 깨문 입술을 뚫고 툭 튀어나온 높디 높은 신음에 필사적으로 그를 밀어내려 내부로부터 안간힘을 쥐어냈다. 허우적거리는 동공은 이내 푸르렀던 허공을 향하고, 어느 순간 어딘가 축축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에게 들통날까봐, 아니. 공포와 수치가 섞여 나온 투명색 액체물에 눈물을 토해냈을 지도 모른다. 하염없이 가운데를 매만지던 그가 실로 나오던 나의 반응에 그새 눈칠 채던지, 꼴좋네. 라며 비웃기 그지없었다.
…아아, 싫다. '그'라는 소용돌이가 나를 감싸 안는다. 덩굴처럼 엉겨붙는 나의 살과 살은 그가 부는 바람의 방향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그만 몸을 비틀고 만다. 그의 아귀에 머물러 틈을 노리고 있자하니, 균열을 뚫고 나의 앞에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가 말한다. 사랑한다 여기고서 버려지는 내게 말한다.
"할 말이라기 보다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해야 하나?"
"…뭐?"
"역시 내 옆에는 당신이 있어야만 해."
주워담은 장난감은 물로 씻기면 그만인 거야. 쓸모 없어지면 다시 버리면 그만인 거야. 그래, 영원히─.
그렇게 다시 한번 더, 그를 띄우던 꼭두각시 놀음의 막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