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발을 내밀 수 없는 곳. 너저분한 먼짓바람이 사방을 가르고, 오아시스 하나 없는 이 곳은 다름 아닌 사막. 아니, 황무지나 다름 없었다. 허나 그는 이 곳을 '전장'이라 스스로 정의했다. 그래, 참으로 미친 놈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내 자신이 어째 이 곳에 도착했는지, 그가 왜 이 곳에 발을 들였는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저, 지금 이 장소에는 너와 내가 짐승처럼 살아 숨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뿐이다. 

 현재 이 곳에 있는 이유를 제기해보자면…. 글쎄. 아마 '복수'를 목적으로 그가 있는 곳까지 달려왔을 지도 모른다. 그의 부하처럼 보이는 괴물들의 목을 베어서라도 위치를 추적해 쏜살같이 달려왔을 지도 모른다. 그에게 느끼는 감정따윈 없다. 단순한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였다. …그래, '복수'다. 흔한 드라마처럼 전개되는 '복수'의 의미가 아닌 혼심을 담은 나의 복수. 

 자기 동생을 죽인 녀석에게 보내는 가짜 보호자의 악랄한 복수.

 그러니, 그는 죗값을 치르러야 한다. 세상물정 모르고 주먹만 휘두루는 악은 '가족'이란 의미를 제 스스로 부쉈기에.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죽인 그의 얼굴을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그 때가 떠오르고 마니까. …아아, 웃긴 이야기다. 나는 결코 공주를 지키는 용사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사라진 그녀의 가족도 아니였다. …가짜 보호자. 말 그대로, 보호자란 이름을 들먹여 가족 행세를 취하고 있던 거다. 그를 죽일 자격은 없었다. 허나 여태까지 그를 찾아 발을 디딘 짧은 여정이 헛되이 끝나지 않도록,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실실 웃어대는 네 녀석을 내 손으로 죽이리라 다짐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 생각했다.

 그의 말에 아랑곳않고 검을 뽑아 들었다. 지독하게 흩날리는 바람, 그에 따라 불어오는 짙은 살기가 검을 싣더니 요동치듯 작은 진동을 벌인다. 나는 그를 보았기에, 가족마저 죽음에 이르던 그의 모습을 보았기에, 잡은 손이 진정할 틈을 줄 리가 없을 터지. 억제된 분노, 사로잡힌 절망.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그녀라는 거미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위처럼 굳어있던 몸이 복잡하게 묶인 실을 풀어내듯, 모아온 것들을 그에게로 분출했다. 그래, 아무런 말도 없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니 새끼도 먹어봐라, 가족을 잃었다는 상실감을 전부 실감해보라고.

 언제까지고 나의 손은 일방통행, 직선만을 향했다. 그렇기에 정면을 마주하던 그의 복부를 향하 검을 그었다. 아니, 관통했다. …그를, 왜, …왜?

 "…왜,"

 검을 붙잡았던 굳은 손을 살며시 놓았다. 나의 검은 바닥에 떨구어지거나 하지 않았다. …아아, 공중에 붕 떠 있다. 분명 완벽하게 손을 떼었을 터, …아아. 그래, 입으로부터 어둑한 피를 쏟아내던 사람은 그이였고, 배로부터 새어나오는 핏줄기를 손으로 붙잡는 것도 그이였다. 나의 손은 망연히 놓아졌고, 나의 검은 괴기스럽게도 그의 복부를 관통했다. 아아, 어찌나 공포스러운 일이던가. 이는 결코 죄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나는 아무 사이도 아닌 그를 찔렀으니, 부정할 리야 부정할 수 없는 정당방위가 확실했다. 그리 믿었다. 괜시리 피하지도 않던 그의 잘못이다. 절대, 절대로 사사건건 따지는 어린 아이가 아니란 말이다.

 그는 과감히 자신의 복부에 꽂힌 검의 뿌리를 손으로 붙잡더니, 이내 과감히 뽑아낼 수 있었다. 허나 안타깝기 그지없던 차후가 있더라면, 그의 선혈이 전보다 몇 배는 불어나 황토색 바닥을 나뒹군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가 뽑아내어 허공에 집어던진 검은 오래 전부터 먼짓 바람에 뒤덮어야만 하였던 운명이다. 나의 검처럼, 모래에 덮인 무거운 검처럼 나도 마찬가지겠지. 저래야 끄떡없는 그이니, 나의 운명은 당연하겠지. 아아, 눈을 감았다. 죽음을 각오한 누앞에서 애매하디 애매한 그녀를 그려냈다. 그녀의 복수랍시고 생각한 나의 행동은 결국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단순한 화풀이었을 거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 두려워 발악한 사람의 최후.

 "이게 끝이야?"

 "그래,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

 "형씨가 그렇게 나온다면야, …어쩔 수 없으려나."

 나의 앞에 같잖게 웃던 그가 바닥에 굴러진 나의 검, 그래.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검을 제 손으로 쥐어잡았다. 윤곽선 사이로 겹겹이 쌓인 모래들은 그가 반호기심 삼아 검을 크게 휘두를 때부터 사라지고 없었다. 나의 초조함도 그의 가벼운 손짓 하나에 말끔히 사라졌다. 황무지가 황무지인 만큼 선인장이 식도를 찌르듯, 침을 고이 목구멍에 억지로 쑤셔 넘겼다. 무의식적으로 인공적인 침물을 넘길 때마다, 그가 한 발짝식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의미없이 툭 뱉은 나의 선언에 그는 웃으며 실망했다. …아니,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였는데.' 이런 반응을 보이고선 나의 검을 쥐었을 지도 모른다. 더는 끝이다. 마지막은 있어도 처음은 없었다. 나의 무모함에 그가 코웃음을 쳤으니, 아아. 참으로 구질구질한 인간이다. 나란 존재는.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어, 형씨."

 망설이던 내 앞에 그는 내게 검을 겨누었다. 자칫하면 찌를 것 같은, 죽을 것 같은 거리에 식은 땀이 빗줄기처럼 우렁차게 쏟아졌다. 이대로 이어지다가는 눈물샘을 빨갛게 자극할 정도로 흘려내릴 것만 같았다. 그러니, 받아들였다. 있는 그대로,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그것이 주어진 운명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이리다. 가벼운 깃털처럼 끝나는 마지막에 눈을 감았다. 도망치는 짓이라 편견해도 상관 없었다. 

 그래, 그녀를 따라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 따라갈 지어니.

 ──허나 생각했던 현실은 달랐다. 나의 앞에 평정을 유지하던 검은 내가 아닌 그를 선택했다. 그의 품으로 잽싸게 달려들었다. 죽음을 다짐했던 굳센 결심은 환상처럼 놓인 상황에 역으로 뒤집어지고 말았다.

 "더 이상 나를 붙잡지 말아줘."

 그 누구도 발을 들일리야 들일 수 없던 황폐한 전장, 그 곳엔 가라앉은 그의 육체를 끌어안고 울부짖던 어리석은 내 자신이 역겨운 숨을 내쉬고 있었다.

Posted by S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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