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해요. 오늘부터 당신을 지켜줄 사람이에요."
아니, 정확히는 뭣도 모르는 당신을 후원한 사람이지요. 여자는 안경을 치켜 올렸다. 척, 하고 귀를 꽂는 금속의 소리가 들렸으니, 여자는 분명 선생마냥 안경을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얼굴 모를 사람을 붙들며 말했다. 어여쁜 얼굴상이네, 라 중얼거린 여자의 말은 안 들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리 여긴다면 섭하고도 남아 돌더라. 현재, 여자의 숙덕거림이 남아도는 어설픈 기류를 따라 알 수 있던 것은 단 하나. …여자는 나를 무시한다. 안내원이랍시곤 사람을 끌고 남의 집에 멋대로 발을 들이질 않나, 비꼬는 어투로 심기를 불쾌히 만드는 꼴을 보아하니, 이 여자는 다른 이들 못지 않게 사람과 사람을 차별하기에 바쁜 몸인가보다. 아아, 여자는 물론이요, 모든 것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불상사로 잃은 시력이 죄가 될 줄은, 결코 모르고 있던 일은 아니었다. 두 눈을 꿈벅이며 주변인들을 보았을 때는 몰라, 허나 한 번의 사고로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친분을 유지하던 주변 사람, 끈끈하디 여긴 소중한 친구. 모두가 제 곁에서 자리를 뜨고도, 나는 잃기만을 반복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사카타 긴토키 씨… 맞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리조차 나를 떠나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채 제 몸은 힘을 잃고 누군가들로 인해 어디론가 끌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낯선 목소리를 지닌 이들이 말하기를, 이곳은 몸의 파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오는 곳. 허나 당신만은 끝까지 부정하다, 이내 '제 발'로 걸어오게 된 곳. 귀를 타고, 장기를 타고, 속내에 심긴 어처구니는 살아남기 위해 도주를 시도했다. 아아,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허울이었다. 이윽고 색다른 장소, 보이지 않는 사람, 눈을 떠보여도 여전히 깜깜한 시야. 그것들은 나를 괴롭혔다. 마치 감옥에 내다 던져진 죄수처럼, 갖은 생각이 벌어진 몸구멍을 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나는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그까짓 눈 하나 보이지 않는다고, 죽을 병이 피어나는 것도 아닐 터. 내가 왜, 왜, 왜.
갇혀 사는 것만으로도 여기저기서 부푸는 의문의 씨앗은 기어코 자라 목을 조였다. 그만큼 이 곳이 너무도 싫었고, 갈증에 시달려 죽음을 바라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어느 한 때 제게 말을 걸어온 누군가에게 부탁했었다. 아무도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서워, 양 무릎을 꿇고 부탁했었다. 아마 그 사람을 붙잡고, 두 물줄기를 쏟아 부으며, 간절히 말했을 것이다. ──제발, 제발 이 지옥같은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제 이름은 카무이에요. …현재 화가로 일하고는 있지만,"
돈 때문에 어떤 기관에서 일을 했던 적도 있죠. ──바야흐로,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도 익숙했다. 톤은 여자처럼 보여도, 중저음을 유지하는 듯한 그의 소리는 어느덧 제 귀를 파기 시작했다. 아아,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그것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나 배우가 아닌, 달달하면서도 애매한, 이상하디 이상한 느낌. 허나 망설이던 정적은 이미 그가 깨뜨리고도,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나름 그쪽의 구세주 역도 했었답니다?"
"앞은 볼 수 없어도, 귀는 분명 나를 기억할 거예요."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알아챘다. 여자는 그와 나를 두고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그와 나 자신이었고, 몰려드는 구름처럼 엄습하는 괴리감은 나와 그를 맴돌고, 다시 맴돌아 저를 습격했다. 허나 발을 놀리기도 전일까. 무섭게 파고든, 한 손으로 제 턱을 바로 잡은 그의 손에 몸은 이미 석고처럼 굳은 뒤였고, 제 귀를 오고가는 그의 숨결은 마치 독처럼 나를 매료시켰다. 입김 하나에 귓등 하나가 똑, 하고 잘려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가 무서웠다. 지금 당장 무슨 행위라도 벌일 것만 같았다. 허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귀에 자신의 소리를 덧붙였다.
'응, 내가 벗어나게 해줄게요.'
'무서워하지 마요, 어서 내 손을 잡아요.'
"당신을 누구보다도 멋진 작품으로 거듭나게 해줄게요."
그것이 헛된 희망의 말이리라 굳게 믿은 채, 그의 답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