읏, 아파. 이러지 마. 잘게 들려오는 그의 신음이 귀를 녹였다. 그의 소리 하나에 사탕 하나가 귓 속을 맴돌듯, 절정을 표하는 그가 이토록 사랑스러울 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저 그이와 성격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아등바등, 미로를 걷듯 헤매어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유닛 활동이든, 마주칠 때도 자주 일어난 일이리라 생각했거늘. 한순간의 이유로 서로를 마주하고, 다르면서도 마음은 같았고, 본능 하나만으로 이리 붙잡고 매달리기를 반복한다. 이는 결코 사랑도, 우정조차 아니였다. 단순히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고, 라 해도 과언은 아닐 따름이었다. 연인끼리나 해보는 행위를 남자와 남자끼리 이어나간다니. 처음은 이상하다,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아니, 무서웠을 지도 모른다. 애초에 내게 있어 사랑은 여동생으로도 벅찬 상태였다. 아무렴, 애써 키우던 사랑은 소중한 사람의 죽음 끝에야 가여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더는 할 수 없었다.
 ……아아, 아무래도 그를 사랑하려 하기에는 키류 쿠로라는 존재가 너무도 하찮았다. 그것 뿐이었다. 그것 뿐이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나는.

  “키류, 아파. 쿠로……,”

  그는 너무도 약해보였다. 그의 좁은 어깨에 제 손을 누르더니, 애써 어설픈 웃음을 띄우며 고통을 만끽하고 있었다. 분명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그에게 매달리고, 붙잡아 더는 도망치지 못하게 묶으려 한다. 절대,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참으로 한심하지. 정겹게 입술을 맞대고, 서로의 입 안에 품은 물컹이는 것을 얽고, 설키며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

  “요망한 도련님이시네.”

  어째, 그는 이리도 귀여운 것인지. 언제쯤 한 번 그의 입에서 제 성이 아닌 이름을 들을 수 있던가. 참으로 경이로운 날이다. 믿지 않을 신에게 감사를 청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자, 잠깐. 키류.”

  멈춰, 멈춰줘. 그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제 등을 세게 두들기며 저를 억눌러도, 그와 함께 자아내는 행위는 멈출 수 없었다. 줄곧 이어가고 싶었다. 그것이 설령 호기심이 부른 장난이라 하더라도 이성에 몸을 넘긴 지금, 곧장 멈추기에는 너무도 늦어버렸다. 이미 제 머릿속은 하스미 케이토로 가득했고, 한 번 멈추면 더 이상은 이어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범했다. 그의 목에 못된 자국을 남겨가면서 까지, 숨을 헐떡이며 갑작스레 동작을 멈춘 그의 모습을 외면하면서 까지. 그리고,

  “학교 골목길도 공공장소라는 건 알고 있는거야?”

  언제나 그렇듯 나와 그의 사이를 가로막는 황제의 목소리를 갈기갈기 찢으려 하였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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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해요. 오늘부터 당신을 지켜줄 사람이에요."

  아니, 정확히는 뭣도 모르는 당신을 후원한 사람이지요. 여자는 안경을 치켜 올렸다. 척, 하고 귀를 꽂는 금속의 소리가 들렸으니, 여자는 분명 선생마냥 안경을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얼굴 모를 사람을 붙들며 말했다. 어여쁜 얼굴상이네, 라 중얼거린 여자의 말은 안 들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리 여긴다면 섭하고도 남아 돌더라. 현재, 여자의 숙덕거림이 남아도는 어설픈 기류를 따라 알 수 있던 것은 단 하나. …여자는 나를 무시한다. 안내원이랍시곤 사람을 끌고 남의 집에 멋대로 발을 들이질 않나, 비꼬는 어투로 심기를 불쾌히 만드는 꼴을 보아하니, 이 여자는 다른 이들 못지 않게 사람과 사람을 차별하기에 바쁜 몸인가보다. 아아, 여자는 물론이요, 모든 것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불상사로 잃은 시력이 죄가 될 줄은, 결코 모르고 있던 일은 아니었다. 두 눈을 꿈벅이며 주변인들을 보았을 때는 몰라, 허나 한 번의 사고로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친분을 유지하던 주변 사람, 끈끈하디 여긴 소중한 친구. 모두가 제 곁에서 자리를 뜨고도, 나는 잃기만을 반복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사카타 긴토키 씨… 맞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리조차 나를 떠나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채 제 몸은 힘을 잃고 누군가들로 인해 어디론가 끌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낯선 목소리를 지닌 이들이 말하기를, 이곳은 몸의 파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오는 곳. 허나 당신만은 끝까지 부정하다, 이내 '제 발'로 걸어오게 된 곳. 귀를 타고, 장기를 타고, 속내에 심긴 어처구니는 살아남기 위해 도주를 시도했다. 아아,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허울이었다. 이윽고 색다른 장소, 보이지 않는 사람, 눈을 떠보여도 여전히 깜깜한 시야. 그것들은 나를 괴롭혔다. 마치 감옥에 내다 던져진 죄수처럼, 갖은 생각이 벌어진 몸구멍을 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나는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그까짓 눈 하나 보이지 않는다고, 죽을 병이 피어나는 것도 아닐 터. 내가 왜, 왜, 왜.

  갇혀 사는 것만으로도 여기저기서 부푸는 의문의 씨앗은 기어코 자라 목을 조였다. 그만큼 이 곳이 너무도 싫었고, 갈증에 시달려 죽음을 바라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어느 한 때 제게 말을 걸어온 누군가에게 부탁했었다. 아무도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서워, 양 무릎을 꿇고 부탁했었다. 아마 그 사람을 붙잡고, 두 물줄기를 쏟아 부으며, 간절히 말했을 것이다. ──제발, 제발 이 지옥같은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제 이름은 카무이에요. …현재 화가로 일하고는 있지만,"

  돈 때문에 어떤 기관에서 일을 했던 적도 있죠. ──바야흐로,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도 익숙했다. 톤은 여자처럼 보여도, 중저음을 유지하는 듯한 그의 소리는 어느덧 제 귀를 파기 시작했다. 아아,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그것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나 배우가 아닌, 달달하면서도 애매한, 이상하디 이상한 느낌. 허나 망설이던 정적은 이미 그가 깨뜨리고도,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나름 그쪽의 구세주 역도 했었답니다?"

  "앞은 볼 수 없어도, 귀는 분명 나를 기억할 거예요."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알아챘다. 여자는 그와 나를 두고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그와 나 자신이었고, 몰려드는 구름처럼 엄습하는 괴리감은 나와 그를 맴돌고, 다시 맴돌아 저를 습격했다. 허나 발을 놀리기도 전일까. 무섭게 파고든, 한 손으로 제 턱을 바로 잡은 그의 손에 몸은 이미 석고처럼 굳은 뒤였고, 제 귀를 오고가는 그의 숨결은 마치 독처럼 나를 매료시켰다. 입김 하나에 귓등 하나가 똑, 하고 잘려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가 무서웠다. 지금 당장 무슨 행위라도 벌일 것만 같았다. 허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귀에 자신의 소리를 덧붙였다.

  '응, 내가 벗어나게 해줄게요.'

  '무서워하지 마요, 어서 내 손을 잡아요.'

  "당신을 누구보다도 멋진 작품으로 거듭나게 해줄게요."

  그것이 헛된 희망의 말이리라 굳게 믿은 채, 그의 답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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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령. 그것이 보이기 시작한 건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가엾게도, 아마 텐쇼인 에이치의 숨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때일 터였다. 처음은 단순히 암울한 목소리로 죄송하다, 며 고개를 숙이는 의사는 저와 그의 부모의 시선을 피해 등을 돌렸고, 상황을 파악한 후 그제서야 찾아온 동료들의 울부짖음. 벚꽃을 닮은 분홍빛의 그가 눈물을 쏟고 난 뒤에야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말았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병원 지하에 위치한 장례식장이었다. 그 곳에서 들려오는 여러 서러움 섞인 곡소리는 심장을 뭉크렸고, 바이러스처럼 전염된 그의 소식에 그리 넓던 장례식장은 사람과 사람으로 붐비게 되었다. 허나 나는 그들에게 인사하기는 커녕, 외면하고, 도망쳤다. 공적인 자리임에도 아니하고 웃고 떠들며 끼니를 채우고 마는 이들이 너무도 공포스러웠다. 그이로 인해 복잡해진 감정은 그들로 인해 엉킨 실타래처럼 영영 풀어낼 수 없었다. 이유는 너무도 당연했고, 풀어내면 풀어낼수록 두 눈에서 투명한 소나기가 고통을 자아낼 뿐이었다.

  "케이토,"

  허나 나는 그의 죽음이 그닥 서럽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부모 만큼이나 괴롭지도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기에, 그의 죽음을 이전부터 깨닫고 있었기에. 되려 폭풍처럼 밀려오는 공허함에 시야를 가릴 뿐이었다. 그의 죽음은 자그마치 휑한 구멍이 나를 덮고, 머리아픈 노이즈가 제 귀를 괴롭히는 것과 다름 없었다. 한 마디로, 노여움 섞인 무의미한 감정이 제 주변을 빙빙 맴돌았다.

  "일어나."

  이상도 하지, 그를 아득히 저 먼 천지를 향해 보냈다고 하거늘. 눈을 떠보니 죽은 그이가 제 입을 맞추고, 억지로 입을 열어 혀와 혀를 섞고 있었다. 전까지만 해도, 눈물로 죽음이라는 것을 알린 그가, 멀쩡히 살아있는 채로 길고 짧은 입맞춤을 이어나가는 것이 아니한가.

  비몽사몽 눈을 뜬 채,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 생각한 것은 단 하나였다. 아아, 살아있다. 그는 살아있었다. 죽은 것이 아니었다. 믿기지 못할 사실은 소소한 기쁨에 겨워 억지된 진실로 넘겨들었다. 그리고 웃었다. 제 위에서 환히 웃고 있는 그를 양 손을 뻗어 받아주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물감을 덧칠한 듯한 그의 좁은 등은 이미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해지기 시작했고, 그와 맞추었던 입술조차 더는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곧 아침이야, 케이토."

  "그럼, 이따 밤에 보자."

  허황된 진실이 무너지고, 그의 영혼을 붙잡으려 허공에 손을 뻗은 채 고요히 흐느끼는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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